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Nov 20. 2024

2021 그날

37. 어머니 20210416


어머니!
벚꽃이 피나 했는데 어느새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꽃비가 내립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일부러 꽃비를 맞으려 나들이했는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기회를 놓쳤습니다. 하는 일은 없으면서 괜히 마음만 분주했나 봅니다. 창밖의 연못을 보다가 벚꽃이 졌음을 알았습니다. 연못에는 꽃비의 무리가 군집을 이루고 있습니다. 잠시 하늘을 나는 새무리들의 군무를 보는 듯 환상에 젖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늘이 얼굴을 찌푸리고 비까지 오락가락합니다. 온종일 순한 날씨를 보이지 않을 것 같아 창밖을 외면했습니다. 대신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궂은 날씨가 한 번 더 어머니를 찾아가게 했습니다. 취침 시간이나 기상 시간에는 첫 번째로 당신을 떠올리며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하느님 고맙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늘 하느님보다 어머니가 우선입니다.


어머니 제가 태어나고 자란 유년기의 고향마을과 선산은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선산에 잠들고 제가 소년의 모습을 잃을 것처럼 고향마을도 예전의 품속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땅으로 돌아갔고 또 많은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났습니다. 마을 자체도 얼굴이 많이 변했습니다. 초가지붕이 양철지붕으로, 꼬불꼬불 흙바닥 길이 뻥 뚫린 시멘트 길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이맘때쯤이면 진달래꽃으로 마을을 둘러싸고 불꽃놀이를 하던 산들도 마음이 변했습니다. 붉은색이랑은 기억 속에 사라진 듯 연두색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해마다 나이를 먹어 없애듯 유년기의 기억들이, 어머니와의 추억이 점차 지워질 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찢겨갑니다. 몇 년 전에 같은 생각을 하며 써놓았던 시를 찾았습니다.


고향은 변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는 내가 늘 어린애이기를 바란다.
손안에 손
배꼽 같은 입술
오목눈이처럼 빛나는 눈

나도 고향 집이 변하는 것을 싫어한다.
함초롬한 초가지붕
바람이 때도 없이 드나드는 돌담
하늘과 땅의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황토마당

나 변했어
너와처럼 둔탁한 손
불도그처럼 처진 입술
안개등처럼 흐린 눈

너도 변했어
녹슨 양철지붕
쇠 철망에 윗자리 양보하고 주저앉은 돌담
입맛에 맞는 것만을 끌어안은 시멘트 마당

그러나 어찌하랴
너 변하고
나 변한 것을

쓸쓸해하지만
아직은 그 기억 있잖아

가끔은 만나야 해
변한 얼굴이라도 기억하게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갑니다. 부지런히 기억을 되살립니다. 당신의 발걸음은 천등산 박달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종형은 어머니의 고향을 이야기하면 늘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입에 올립니다.


제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망경산 자락, 그리고 성장기의 서울, 그리고 부천, 인천.
눈을 빨리 옮길 수 있어서 좋기는 한데 당신의 발걸음은 길고도 멀었습니다. 다 합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까요. 달나라를 몇 번 왕복했을까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길에 애환을 펼쳐놓는다면 해를 가리고 별을 가릴 수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머니!
오늘 공부 시간에는 편지글로 된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곰이 새를 찾아가는 우정의 편지글이었습니다. 저는 새 대신 어머니와의 추억을 찾아가는 곰이 되어야겠습니다.


어머니!
선산에 이르면 어머니 품 안에 안겨야겠습니다. 어머니는 곧 망초꽃을 피워 길을 인도하겠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