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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1. 2024

2021 그날

43. 시간의 조각 20210425

내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눈 깜짝할 틈에 하루가 지나가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청소년기의 시절에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내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할머니의 시간과 내 시간의 빠르기가 달랐나 봅니다.


어느 화창한 날입니다. 바깥일을 하고 돌아오신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봄볕이 이렇게 짧아서야 원, 하루해가 화살 같구먼.”


망경산 봉우리 너머로 얼굴을 숨기는 해를 바라보며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몸에 달라붙은 먼지를 떨어냅니다. 어느새 저녁밥을 지을 시간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의 내 시간은 게으름으로 일관했나 봅니다. 무엇 하나 남의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있는 듯 없는 듯해 보이는 생활이었습니다.


지금은 할머니가 말씀하시던 그때의 시간과 내 시간이 보조를 맞추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내가 할머니 나이만큼의 이르렀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하룻볕이 얼마인데…….’


이웃집 서당 선생님이 학동들에게 타이르는 말씀이었습니다.


“소년이로학난성하니, 일촌광음불구경이라(少年易老 學難成, 一寸光陰 不輕), 그러니 시간을 헛되이 보내서야 하겠는가.”


긴 담뱃대가 놋재떨이를 깨뜨릴 기세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우리 집 담장을 넘어왔습니다. 명심보감 책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학문을 이루기 어려우니 시간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아직도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열심히 할걸 그랬지.’


엎질러진 물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큰맘 먹고 책을 들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시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간은 금이라고요. 누가 알았습니까. 그럼, 자투리 시간은 금 조각이 아닐까요.


‘시간을 이어 붙이면 금덩어리.’


요즈음 나는 마음이 정말 바쁩니다. 예전이라면 생각도 없이 버렸을 자투리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틈틈이 책을 읽고 글쓰기에 몰두합니다. 늦었지만 미술에도 흥미를 느끼고 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예전에는 어른들이 세월이 빠르다고 말씀하실 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수긍이 갔습니다.


며칠 전에 인사동에 갔습니다. 일 년이면 몇 차례씩 가다 보니 길이며 가게들이 눈에 익습니다. 나는 많은 가게 중에 우리 민속품을 파는 곳에 머무는 시간이 많습니다. 한복은 물론 다식판, 조각보……. 조각보를 보는 순간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립니다. 두 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모시 틀에 앉았습니다. 천을 짜기 위해서입니다. 저것을 언제 다 짜나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한 필 두 필 모여 시장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옷감 몇 필은 어느 순간 할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귀중한 옷으로 탄생했습니다. 옷을 마름질하고 남은 천은 어떻게 될까요. 아기의 손바닥처럼 작은 천들이 모여 조각보가 되었습니다. 조각보는 밥상을 덮는 용도로 쓰입니다. 바구니의 덮개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인사동의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색깔이 모인 조각보가 시선을 끕니다. 한마디로 화려합니다. 하지만 옛날 우리 집의 조각보와는 실용적인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할머니의 조각보는 다소 투박하고 색감이 없어서 그렇지, 부엌에서는 한 수 위임이 틀림없습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쓰임보다는 치장을 할 수 있는 기념품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조각보의 차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찮은 천 조각이 모여 보를 이루었듯 자투리의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한 바를 이루리라는 생각합니다.


책에서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연속적이고 순환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크로노스(Kronos)‘, 순간이나 주관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특별한 시간으로 만든다는 면에서 '카이로스'는 기회의 신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시간은 돈이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것과 같이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시간은 우리에게 돈을 제공해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다른 것을 가져다줄 수도 있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


굳이 속담을 들지 않아도 조각보를 만들 듯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건강을 얻을 수 있고 재물이나 명예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조각보를 들여다봅니다. 시간도 역시 이음새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색깔도 다릅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열심히 살아보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시간에 옭매인 생활을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취의 즐거움과 마음의 여유를 함께 누려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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