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Nov 21. 2024

2021 그날

44. 호떡이에요. 20210426

호떡입니다. 아내가 그 그저께 낮에 호떡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나는 지금은 책을 읽는 중입니다. 시간을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잠시 쉬어도 되고 여의찮다면 내일 읽어도 됩니다.


“그럼 가지 뭐.”


“오늘은 바빠요.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고민입니다.”


그렇습니다. 서예 작품을 내야 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전날까지는 열심히 써야 합니다. 대회에 출품할 거면 자신이 쓴 작품 중의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내야 합니다. 서예뿐만이 아닙니다. 그림, 조각, 도자기…….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문학작품을 대회에 응모할 때는 써놓은 작품 중 어느 것으로 정할까 망설입니다. 이어 내용을 수정하고 다듬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원래 작품이란 게 그렇습니다. 얼렁뚱땅해서 될 일은 아닙니다. 이심전심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자 갑자기 호떡 생각이 납니다.


“며칠 전에 호떡 먹고 싶다고 말하더니 잊었나 봐요.”


우리는 전철을 타고 소래에 갔습니다. 내가 떠올린 곳은 남대문 시장이지만 생각만으로 끝냈습니다. 지금 갔다 오기에는 다소 무리라는 느낌이 듭니다. 언제부터인가 밤길을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역전의 호떡 포장마차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역에서 어시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인심이 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덩어리가 조금 커 보입니다. 부부의 상냥함도 한몫한다고 봐야겠습니다. 손님에게는 물론 부부끼리도 오순도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녁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하나 둘 제집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하지만 오늘도 줄을 섰습니다. 한 달 전보다 눈에 띄게 줄었지만 역시 기다려야 합니다. 호떡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맛있게 해 드릴게요.”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들고 뒤편의 너른 공간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둥그런 벤치가 줄을 이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리가 텅텅 비었습니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좋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람과의 거리 두기가 저절로 지켜지는 셈입니다.


뜨거운 열기가 아직도 가실 줄을 모릅니다. 한 입 베어 물려고 하자 입주위에 뜨거움이 달려듭니다. 컵을 입에서 한 뼘 떨어뜨립니다. ‘후우’ 호떡은 물론 컵에도 바람을 불어넣습니다. 녹차의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듭니다. 한 끼를 굶은 사람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이 컵으로 다가갑니다. 조심스레 한입 떼어 물었습니다. 달콤함과 고소함이 입안에 맴돕니다. 차진 반죽과 씨앗이 어울려 이빨을 자극합니다. 씹는 즐거움이 곁들여집니다. 한 입 한 입, 천천히 먹는다고는 해도 어느새 빈 컵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호떡을 산 것은 모두 다섯 개입니다. 미리 한 개씩만 먹기로 했습니다. 한꺼번에 두 개를 먹은 일이 있었는데 속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한 개씩 나눴으니 세 개가 남았습니다.


“두 개만 사지 뭘 더 사?”


“아들도 맛을 봐야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 나오면 늘 아들의 몫은 잊는 버릇이 있습니다. 소래에 온 목적이 호떡이었지만 이만 돌아가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이왕 온 김에 어시장을 한 바퀴 돌아볼 셈입니다. 바다도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직진이라는 말에 아내는 시장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어물을 살 계획이 없지만 뭐라도 하는 마음에 시장을 둘러봐야겠습니다. 소 남 보듯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습니다.


소래의 옛 철교 위에 섰습니다. 밀물이 다리를 밀칠 듯 밀려옵니다. 무의도가 머릿속에 다가옵니다. 이 섬에 사 년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낚시를 하는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나는 종종 밀물이 들어올 무렵이면 선착장에 나갔습니다. 물론 낚싯대를 들었습니다.


“호떡 드셔보시려오. 식어서 맛이 날지 모르겠네.”


“웬 호떡?”


시내에 나갔던 이웃 사람이 배에서 내려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좀 굳긴 했지만, 맛은 살아있었습니다.


‘다음에는 남대문 시장으로 가는 거야.’


남대문 시장의 호떡은 차 향기 대신 수수의 맛이 들어있습니다. 먹다 보면 수수부꾸미 생각이 납니다. 모양은 좀 다르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부꾸미 맛이 스며있습니다. 수수가 비싸서 그럴까요. 생각보다 크기가 작지만, 맛은 두 배입니다. 기웃기웃 시장의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점심때가 됩니다. 단골 메뉴인 생선구이 백반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차 대신 수수 호떡을 선택합니다. 크기가 좀 작으니, 배를 채울 공간의 여유는 있습니다. 맛이 두 배라고 했는데 식사 후에도 변함은 없습니다.


전철에서 잠깐 조는 사이에 입맛을 다셨나 봅니다.


“그렇게 맛이 있었어요?”


“그게 아니고, 남대문 수수 호떡이…….”


“내일 가자고는 하지 말아요. 자주 먹으면 맛을 버리니까.”


한 달 후에나 가야 할까 봅니다. 호떡을 입에 물고 둥근 보름달을 보면서 모처럼 야경을 즐길까 합니다. 천 원의 즐거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