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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1. 2024

2021 그날

45. 과자와 소주 20210429

공기, 그건 무료입니다. 사람들은 공짜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봉지에 든 과자를 먹어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건빵 봉지나 사탕 봉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새우깡, 감자칩과 같은 배가 빵빵한 것들입니다.


처음 새우깡을 샀을 때 기분이 나빴습니다. 두 번째는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감자칩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에 다시는 이와 같은 것은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우깡 봉지를 열었는데 위 공간이 텅 비어있습니다. 내용물이 절반밖에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건 완전 사기야.’


불쾌감을 넘어서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게 얼마라고, 이럴 거면 값을 올려 받을 것이지 하는 생각에 울화가 불끈 솟구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이런 심정을 이야기했는데 모두 같은 생각입니다. 알고 있으면서 내 체면을 생각해서 동조해 주었는지 그들도 정작 모르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내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늘 불쾌했으니, 이후로는 봉지가 빵빵한 과자를 사는 일이 없었고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남들이 봉지를 내밀어도 짜다, 너무 달다, 먹고 나면 부스러기로 주위가 지저분하다는 등의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나중에야 안 일입니다. 신문 기사입니다. 건빵 봉지처럼 속을 꽉 채우지 않고 공간을 두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공간이 과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장에서 고객에게 전달되기까지 이동되는 과정에서 공간이 없으면 단단하지 않은 과자는 잘 부스러집니다.


더구나 봉지 속의 공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공기가 아닙니다. 질소 가스입니다. 나는 이 질소 가스가 과자가 상하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인체에는 해가 없습니다.


그 흔한 보통의 공기를 넣으면 어떠할까요. 금방 눅눅해지고 상하게 됩니다. 질소 가스는 유통기간을 늘릴 수 있고 내용물의 맛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과학상식을 읽고 나니 질소 가스는 공짜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자를 다 먹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있습니다. 봉지 안에 과자가 더 들어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어서 소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전연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경우 마지못해 인사치레로 한두 잔 입에 대는 정도입니다. 이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질소가스가 들어있는 과자의 예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소주뿐만 아니라 음료수병을 보면 늘 병 입구에서 내용물까지 일정 부분에 공간이 있습니다.


‘야박하기도 하지. 내용물을 가득 채웠다고 뭐……’


값으로 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량 생산을 하고 있으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모이고 모이면 크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병을 놓고 볼 때는 별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득 채우고 값을 조금 더 받든가.’


내 생각이 바뀐 것은 몹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소주병이 얼어 터졌다는 라디오뉴스를 들었습니다. 설마 했습니다. 그 독한 소주가 얼어 터진다는 말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부엌의 물독이 얼어 터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 음료수병에 공간을 두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내용물이 팽창으로 용기가 깨지거나 병뚜껑이 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렇듯 우리 실생활에서는 과학적 원리들이 숨어있습니다. 주전자 냄비 뚜껑에 작은 구멍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무작정 탓을 하기보다는 이상하다 싶으면 원인이나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뉴턴이나 코페르니쿠스처럼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하다 싶은 것들이 때로는 다른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들이 모두 그렇다고 믿는 진리들이 조건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도 있습니다.


의문을 가지면 찾아보고 밝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는 자신의 무식함에 종종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떡하겠습니까. 지난 일은 지난 일이고 조금씩이나마 무지를 일깨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 책을 읽습니다.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면장(面長), 읍장(邑長), 동장(洞長)의 장(長)이 아닙니다. 벽을 향해서 서 있는 암흑의 세계를 형용하는 말이 바로 장면(牆面)입니다. 이런 꼴을 '면(免)한다'라는 말이 바로 '면장(免牆)'입니다. 무엇인가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답답함을 면할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에 유추하여 바로 '알아야 면장을 하지'란 속담이 나온 것입니다.


내가 한자에 관심이 없을 때는 '면장(免牆)'을 '면장(面長)'으로 알았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무식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궁금증을 풀어가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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