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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46. 나 눈을 감으면 20210501

장례 계획이라고요. 무조건 간소화입니다.


나 죽었다고 눈 감았을 때

촛불일랑은

달랑 하나만 밝히시지요.


그 흔한 지방'현고학생부군 신위((顯考學生府君 神位)'은 사양해요.

스마트폰 속의 내 희미한 자화상으로 대신할게요.

문구는요

‘나 갔다.’


빨리 가야 해요

그곳으로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모두 이 세상을 하직하면 가는 곳이지만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땅으로 간다고요. 눈에 보이는 현상일 뿐입니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나는 죽음에 대해 어릴 때와는 달리 몇 년 전부터는 별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친척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죽음이란 단어에는 무덤덤합니다. 수행자들이 엮어놓은 성경과 불경을 비롯한 많은 서적의 힘이라 여겨집니다.


“내 안에 삶이 있는 한 내 죽음은 없습니다. 죽은 다음에는 내가 없으니, 그마저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은 명사일 뿐입니다.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해야 할 일이니, 사후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내가 노인문화회관을 찾아 배움을 이어갈 때입니다. 추모 공원에서 ‘죽음에 대한 준비’라는 세미나가 있어 참석해 보았습니다. 이론과 함께 실습을 했습니다. 먼저 시설을 둘러보는 동안 여러 나라의 장례문화, 시신을 모시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매장, 화장이 있고, 더 세분화하면 봉안당, 수목장, 잔디장, 풍장, 수장……. 나는 화장을 선호합니다.

다음은 회의실로 들어가 각자 유서를 써 보았습니다.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 누워보는 체험을 했습니다. 해보고 싶었지만, 생각으로 끝났습니다. 순발력 부족입니다. 나보다 한 발 앞선 사람이 차지했습니다. 그는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습니다. 그분요, 관에서 핼쑥해진 얼굴로 나오자마자 실내가 떠나갈 듯 흐느끼며 눈물을 바가지로 쏟았습니다. 관 뚜껑을 덮고 못을 박는 소리에 두려움이 엄습했나 봅니다. 많이 놀랐던 게 틀림없습니다. 두 번 죽을 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는 연명치료를 거부합니다. 그건 고통의 길입니다. 죽음이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내 유골은 바다와 산이 마주 보는 곳에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고민이 된다면 수목장입니다. 장례 절차를 말하기 전에 해둘 말이 있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삶을 좋아합니다. 죽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떠나는 길에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친구로 한정합니다. 참석자로는 사촌 이내로 제한하고, 친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 몇 명으로 족합니다. 보통 삼일장이지요. 나는 아닙니다, 내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이틀로 족합니다. 슬픔을 빨리 덜어내고 싶습니다. 내가 가야 할 길로 빨리 찾아가 자연과 친해져야 합니다.


전에 ‘장자’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의 부인이 죽자, 땅으로 돌아가면 망자를 반길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노래로 이야기합니다. 장자는 삶 자체에 주목했을 뿐 사후 세계에 관한 생각에는 관심이 적었습니다. 단지 죽음을 나쁘게만 여기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공자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나는 그분들보다는 생각의 길이가 짧습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무뢰한입니다. 그러고 보면 맨주먹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듯이 다음의 세계가 있다면 백지상태에서의 출발을 각오합니다.


나는 장송곡이나 이별의 노래 대신 쇼팽(Chopin) 녹턴 2번(Nocturne op. 9 No. 2 )을 들려주기를 원합니다. 평소에 기분이 들떠있거나 불안할 때 마주하는 곡입니다. 마음이 불편할 경우 길을 무작정 걷다 보면 무념무상에 빠지듯, 이 곡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정제의 효과가 있습니다. 장례를 위한 장송곡은 많습니다. 몇 작품을 들어보았지만, 그보다는 앞의 곡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다음으로는 ‘구노의 아베마리아(Ave Maria)’를 선택합니다. 눈을 감고 있노라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예나 저나 나이와 관계없이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은 같은가 봅니다.


떠나는 길에 의복은 있어야겠지요. 나는 동화 속의 발가벗은 임금님은 아닙니다. 맨몸으로 태어났다고 가는 길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망자처럼 명주나 삼베 수의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생전에 입던 깨끗한 옷으로 입으렵니다. 친근해서 좋습니다. 내 몸을 뉠 것으로는 종이 관으로 하겠습니다. 가벼워 운구하기에 편하고 자원의 낭비도 줄일 수 있습니다. 유골함 역시 종이나 나무로 만든 것이 좋습니다. 태우거나 땅에 묻으면 빨리 분해되어야 합니다.


집에 있는 나의 유품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 외에는 내 모든 흔적을 지우라고 부탁합니다. 남은 옷가지는 관속에 넣으면 좋겠습니다. 유언을 남기는 글을 썼을 때 밝힌 것처럼 죽은 자는 산자를 위해 양보를 해야만 합니다. 예전 우리나라의 장례나 제례 문화를 살펴보았습니다. 망자로 인해 그 가족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효도의 본질을 과대평가하여 조상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시묘살이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세도가를 흉내 낸 양반들의 허세였는지 모릅니다. 제상을 차리는 것 또한 같습니다.


내 유년기 시절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반 가정에서는 삼년상은 기본이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올렸습니다. 나도 아버지께 상식을 올렸습니다. 그보다는 ‘있을 때 잘해…….’가 어울리지 않습니까. 유행가 가사 중 일부입니다. 겉치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평상시의 돈독한 우애가 한층 더 돋보이지 않습니까.


‘살아 있을 때 잘할걸.’


어머니가 손짓합니다. 어느덧 찔레꽃이 곱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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