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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47. 어린이 날 20210505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린이날이면 어김없이 불렀던 노래입니다. 어린이날뿐만 아닙니다. 가사와 리듬을 익히기 위해 며칠 전부터 매일 불렀습니다. 아직도 그때의 풍금 소리기 귓전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내가 교직에 있는 동안에도 기념식은 계속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가족의 생일처럼 국가의 기념일도 잘 챙겼습니다. 국경일과 각종 기념식이 소홀해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잠에서 깨어나자 갑자기 어린이날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불러보려고 입을 벙긋했으나 첫 소절만 입 밖으로 나오고 다음부터는 가사가 가물가물합니다. 어쩔 수 없이 허밍으로 가락을 짚어갔습니다. 아내가 어느새 다가와 묻습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오늘이 어린이날이잖아요. 가사가 떠오르지 않네.”


아내도 가사가 떠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들이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재촉합니다. 엊그제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점심을 사겠다고 합니다. 회사 일이 바쁘다 보니 알면서도 생일날은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내는 이왕 미룬 거 어버이날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아들은 그날도 바쁠지 모르니 쉬는 오늘로 마음을 정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식사하고 모처럼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틈나는 대로 운동 삼아 이 공원 저 공원을 걷지만, 아들과 함께하는 것은 올해 들어 처음입니다. 쉬는 날이고 보니 아내는 아들에게 공원 주변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입니다.


“유럽풍으로 조성한 상가 중에 값싸고 맛있는 커피점이 있는데 가보자.”


건널목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서자 다른 나라에 온 느낌입니다. 마치 명동이나 인사동 등 번화가에 가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보입니다. 그 넓은 공원은 모처럼 활기찼습니다.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 호수의 물살에 몸을 맡기고 배를 타는 사람들, 네발자전거 수레에 어깨를 마주한 식구들, 벤치의 사람들, 걷는 사람들.


‘웬 꼬마들이 이렇게 많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새싹이 솟아나듯 여기저기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이날임을 실감합니다. 병아리처럼 쪼르르 달리는 아이, 앙증맞게 킥보드를 미는 아이, 꼬마 자전거, 유모차에서 방글거리는 얼굴.


나는 여느 때와는 달리 걸음걸이가 불편합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서툰 이들과 부딪칠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아이가 다가오면 피하는 대신 발걸음을 멈칫합니다. 잘못 피해 주다가는 같은 방향이면 부딪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해 전부터 결혼이 늦어지고 애 낳기를 꺼려해서 출산율이 현저히 줄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예전에 비해 아이들이 눈에 많이 뜨이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골 동네에서는 일 년 내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출생아 수가 현저히 줄어들자, 산부인과 병원이 폐업하기도 했습니다, 임산부가 먼 이웃 도시까지 원정하여 출산해야 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을 바꾸어 놓으려고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나들이했을까요. 분명 아님을 알고 있지만 내 눈에는 숫자가 몇십 배로 증가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어린이날의 산책, 오늘은 평소와는 달리 내 발걸음과 눈 맞춤이 다릅니다. 주위의 자연물에 가던 시선이 산책하는 내내 꼬마들의 모습에 홀렸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발걸음, 어린아이 같은 동심에 물들었습니다. 꼬마들도 내 눈 맞춤을 알았을까요. 마스크에 가려진 미소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눈이 환해지며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아장아장 걸으면서도 방긋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나는 요즈음 그림책에 빠졌습니다. 평생학습 강좌 중 그림책 강의를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내가 문학에 취미가 있기도 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손자 손녀를 위해서입니다. 사실은 문화관광부의 도움을 받아 한정본으로 그림책 한 권도 발행했습니다. 책을 펼쳐보고 그림을 좀 더 잘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어쩌지요. 아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데 어쩌지요. 우리의 걱정과는 달리 아들은 결혼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분명 적령기를 넘겼다는 생각이 드는데 말입니다. 재촉도 몇 번이지. 이제는 눈치나 보는 처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재미 하나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기의 울음소리, 옹알이, 방글거리는 입, 눈웃음, 몸을 뒤집고 엉금엉금 기고, 따루따루 중심을 잡고, 발걸음을 떼다 주저앉고…….


공원에서 눈을 마주친 아이들이 주르르 눈에 매달립니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고 밝게 자리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손을 하나하나 잡아봅니다. 텅 빈 거실에서 기차놀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오늘은 어린이날임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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