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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49. 너 말이야, 자전거 20210508

너도 이제는 나만큼이나 노쇠해졌구나. 몸도 마음도 말이야. 겨울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피부가 더욱 거칠어졌어. 내 손을 잡아주던 네 손은 빛을 잃어가고 내 엉덩이를 받쳐주던 엉덩이는 먼지를 뒤집어썼네. 네 발은 힘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어. 바큇살이 너를 겨우 지탱해 주고 있으니 하는 말이야.


내 손이 내 마음이 잠시 너를 멀리했던 때문이야. 나와 같은 공간을 사용했어야 하는데. 가끔 찾아가 너를 어루만져야 했는데.


장모님께서 주신 생일 선물이었어. 손가락을 꼽아보니 사십 년이 훨씬 지난날이네.


너, 기억하니. 처음 만난 날, 내가 너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말이야. 너를 길들이겠다고 무작정 올라타고 중심을 잡아주려고 했지. 네가 말을 듣지 않아 내가 여러 번 넘어졌지. 하마터면 머리를 땅에 박을 뻔했잖아. 너 또한 마찬가지야. 나를 태우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바람에 네가 나와 함께 도랑에 처박혔던 일. 생각해 보니 잠시뿐이었어.


우리는 곧 친해졌지. 젓가락 짝처럼, 마음만 맞으면 어디든지 갔으니, 말이야. 멀고 가까움에 뭐 문제가 있었니. 엎드리면 닿을 코앞은 어슬렁어슬렁, 게으른 사람이 싫어하는 먼 곳까지도 바람을 가르며 달렸지.


부천에 살 때의 이야기야. 우리 김포의 들판을 신나게 달렸잖아. 넓은 길을 무작정 달린 나머지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네 발이 터져버렸어. 무엇엔가 날카로운 것에 찔렸지. 아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달릴 수 없기에 함께 병원을 찾아 십여 리 길을 함께 걸어야 했지. 넌 대단한 녀석이었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시 후 나를 태우고 바람을 갈랐어.


더 말하면 뭐 하겠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줄까. 길이 아닌 길도 함께 다녔으니 말이야. 소래산, 계양산 정상을 정복하고, 갯벌도 쑤시고 다녔지. 이때만큼은 오로지 내 힘이었어. 그렇다고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야. 너는 나보다 몇백 배나 나를 위해 헌신을 했으니까.


어쩌지. 너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말이야. 오늘은 너를 목욕을 시켜야겠구나. 묵은 때를 벗겨야겠어. 잠시 기다려. 마른걸레, 기름. 드라이버. 스패너가 있어야겠다. 등허리에 녹이 보이네. 사포도 필요하겠군. 너를 앞에 놓고 보니 장모님 생각이 난다. 오늘이 어버이날이잖아.


새 단장을 하고 함께 달려보는 거야.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 이제는 너도나도 힘에 부칠 거야. 뭐 그렇다고 주눅 들지 마. 옛 기분이면 되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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