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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50. 그래도 잘 살았다고 20210510

삶이란 게 지나고 보면 다 도토리 키 재기 아니겠습니까. 아등바등 살았어도 삼시 세끼 먹는 것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젓가락 가는 곳이 좀 많고 적을 뿐입니다. 그래도 잘 살았다고 생각해 보라는군요. 맞아요. 그래도 잘 살았어요.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만 점차 하늘의 구름이 옅어집니다. 나뭇잎을 흔들던 빗방울이 힘을 잃었습니다. 낮게 드리웠던 구름 조각이 높이 오릅니다.


이팝나무가 생기를 얻었습니다. 이팝을 푸짐하게 매달았습니다. 조팝나무가 춘궁기를 알리더니만 고개를 숙이고 대신 이팝나무가 목을 세웠습니다.


오늘은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의 건널목을 건너는데 중앙분리대의 꽃밭을 차지한 보리를 발견했습니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서인지 힘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꼿꼿이 선 채로 어느새 누런빛을 띠고 있습니다. 참 오랜만에 마주한 보리입니다. 지난날 구슬픈 보리피리의 가락이 내 입에서 흘러나올 듯합니다.


‘삼사월 춘궁기, 오뉴월 보릿고개.’


옛이야기가 돼버렸기 때문일까요. 노년들의 말속에 쌀의 뉘처럼 가끔 섞여 나옵니다.


제목처럼 잘 살았다고 믿어야 합니다. 믿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입니다. 나는 친구들보다 몸이 허약했고 입이 짧았습니다. 무엇을 먹고살았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두 그 어려웠던 시대를 잘 버텨냈습니다.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배부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개하고 자리에 누우면…….’


나는 나물조차도 싫어했습니다.


잘 산다는 게 뭐 있습니까. 배부르고 걱정거리가 없으면 되는 겁니다. 여기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다면 상감마마 부러울 게 없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잘 산다는 의미의 첫 번째 조건은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작은 것에도 희열을 느끼면 행복입니다. 내 안의 만족입니다.


불행의 씨앗은 남과의 비교에서 비롯됩니다. 큰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야겠습니까. 그건 아니지요. 호랑이나 사자처럼 용감해야겠습니까. 곰처럼 힘이 세져야 합니까. 아니면 새처럼 하늘을 잘 날아야겠습니까.


어렸을 때입니다. 어른들이 장래 희망을 물었습니다.


“대통령, 국군 대장, 빛나는 일등병…….”


뭐 알고나 하는 대답입니까. 남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니 되고 싶은 것이 수시로 변했습니다. 나중에 알아차린 것은 이상의 크기가 점점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대통령이 되고 대장이 된다면 나라가 어찌 되겠습니까. 못 이룬 꿈이 많습니다. 그중 대통령이 되지 않은 것을 ‘여우와 신포도’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최고지도자는 하나같이 불행했습니다. 미운 생각을 하다가도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잘해보고 싶었는데 초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데 남의 말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지금까지 굴곡이 심하지 않은 길을 걸었습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 아이였습니다. 학교와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으니 말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아직도 동심이군, 이렇게 순진해서야 원.”


맞습니다. 나는 늘 일차원입니다. 여느 사람들처럼 사차원의 계산된 마음을 불러올 재간이 없습니다. 가끔은 내 어리석음에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늘 아이들과 책과 놀다 보니 아직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책을 들고 펜을 들면 혼자가 되어도 답답함이나 지루함이 사라집니다. 나는 지금도 학생입니다. 알아가는 과정이, 표현하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코로나를 이기는 제일 나은 방법입니다.


나에게는 독서와 쓰기가 내 일상에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첫 줄을 쓰는 것이 외국의 공항에서 목적지의 게이트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었습니다. 한 줄을 쓰고도 이것이 맞는 것인지 이리저리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아직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낯선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수필, 시, 동화, 그림책 등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무작정 써봅니다. 무작정 그려보는 겁니다. 누군가는 내 글이 너무 길고 산만하다고 조언해 줍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관찰력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직 내 글은 길어야 합니다. 내 그림은 깔끔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많이 불러 모으는 습관을 기르는 중입니다. 나무의 가지치기는 나중에 틈틈이 할 생각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밑천도 부족하면서 신문사에 도장을 찍으려 했습니다. 신춘문예 도전입니다. 지난해입니다. 자그마치 여덟 곳의 신문사에 각기 다른 동화 원고를 내밀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품었지만 뻔한 일 아닙니까. 감감무소식입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노는 격입니다. 희망 사항이었습니다. 되면 한턱내려고 했는데, 생각만으로도 잠시 즐거웠습니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나를 일으켜 세웁니다.


어느 사업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해봤어.”


늦었지만 해보는 중입니다. 이제야 내 길의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은 큰 위안입니다. 자신을 다독입니다. 아직도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요즈음은 사고의 폭을 좀 더 높일 생각에 철학책에 눈을 돌렸습니다. 읽기가 어렵습니다. 철학자들의 생각입니다. 우선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읽고 있습니다. 겉의 맛이라도 보고 또 보면 분명 속의 단맛에 끌릴 것입니다. 첫 숟갈에 배부를 리 없다는 것을 압니다.


평탄한 삶은 나를 크게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게 한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도를 놓고 보이지 않는 하늘길도 그립니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왕초보 영어 삼 년에 손짓, 발짓, 눈짓까지 더해봅니다. 마음만 먹으면 아내와 함께 떠날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아!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급히 마음을 바꾸어야겠습니다. 잠시 모든 걸 중지합니다. 잠시 잠깐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거 아닌감.’


잘 살았습니다. 미래 확정형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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