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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52. 오늘은 멍 때리는 날인 줄 알았는데 20210516

어제오늘은 비가 쉬지 않고 쏟아집니다. 5월의 비답지 않게 내일까지 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폭우는 아니어도 쉬지 않고 내리는 비는 그 양도 많습니다. 가랑비에 옷 적신다는 말이 있지만 그와는 정도가 다릅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 밖을 내다보니 유리창에 빗방울이 올망졸망 올챙이처럼 매달렸습니다. 방수 기능이 없었다면 거실 바닥을 물놀이장 삼아 재미있게 놀지 않았을까 하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잠시 눈을 떼지 않고 있으니, 빗방울들은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몸을 맡깁니다.


동료들과 함께 글공부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밴드에 그림책의 한 페이지를 올렸습니다. 간밤의 비바람에 민들레의 상황을 표현하는 장면입니다.


‘밤새 나무들이 울었습니다.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눈을 뜰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지금은 괜찮으신 거지요.”


잠시 고민이 됩니다. 나의 건강을 물은 것인지 민들레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되물어 보기는 싫습니다. 답변하기도 그렇습니다. 내가 매일 한 장면씩 올리는 민들레의 이야기인데, 그렇군요. 어제의 그림과 연결을 시키지 않는다면 그의 안부는 틀린 것이 아님을 짐작합니다.


나는 요즈음 사진 편집에 푹 빠져있습니다. 이제 겨우 여섯 시간을 소화했는데도 말입니다. 평소에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올릴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림책 공부시간입니다. 강사님이 강의 시작에 앞서 몇 분간에 걸쳐 수강생들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내 차례입니다.


“사진 편집을 배우고 있습니다. 사진에 내가 필요로 하는 글을 몇 자 올리는 것입니다.”


“그럼 공부도 할 겸 우리 밴드에 올려보세요.”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반응이 좋습니다. 그림과 글이 어울린다는 칭찬과, 나도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물음도 있습니다.


나는 사진 편집에 있어 아직 왕초보입니다. 그동안 스마트폰을 잘 이용하는 것을 배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신청을 해보았지만, 경쟁이 심해 한 번도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나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수업이 제한되어 시간을 인원수로 나눴습니다. 총 사십 시간인데 네 명씩 조를 짜서 배분하다 보니 여덟 시간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이 시간도 감지덕지합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글쓰기에 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밴드의 동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사실 나는 그림책을 한 권 만들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그림책 만들기가 있다기에 신청했는데 생각지 못한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문화관광부에서 강습에 필요한 물품과 책을 발행하는 비용을 주었습니다.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비록 그림과 내용이 부실하다 싶었지만 첫 책을 발간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그러거나 말거나’입니다. 장래 희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 그림책 글쓰기를 배우면서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도서관으로 가는 중 갓 피어나는 길가의 민들레꽃을 보았는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널목 위의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자칫 곧 누군가의 발에 밟힐 것만 같습니다.


‘아, 이거야.’


어느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사진 편집과 내 생각이 어우러지는 순간입니다.


올해도 용기를 내어, 또 다른 곳의 그림책 만들기 실습에 도전했습니다. 이제 첫 번째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일여 년의 수강 기간이고 보면 내년쯤에는 한 권의 책을 선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습니다.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져 끝까지 고심했던 그림과 글, 그리고 줄거리가 이제는 차근차근 실마리가 풀려갑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줄거리는 이미 완성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재미있게 완성하느냐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두 곳의 밴드에 한 페이지씩 내용과 장면을 조금씩 다르게 올려보는 중입니다. 동료들의 반응을 보고 조언도 구해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비 탓일까요. 모든 것이 다 싫다는 마음이 듭니다. 푹 쉬고 싶습니다.


‘그래 하루 정도는 어물어물 지내지, 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글도 써지지 않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저 하는 생각으로 자판을 두드리니 한 편의 글이 써졌습니다. 그림책의 줄거리와 장면들을 다시 점검해 봅니다.


비를 맞는 재미도 있으니 점심 후에는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부터 계획된 일이니 나가야겠죠.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속삭임이 나에게 좋은 영감을 불러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나가는 김에 나 몰래 속삭이는 민들레와 빗방울의 만남도 관찰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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