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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2. 2024

2021 그날

53. 발길 20200517

걷다 보면 마음에 내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내가 유년기에 가장 싫어했던 길은 상엿집이 있는 곳입니다. 또 있습니다. 귀신이 나온다는 서낭당 고갯길입니다. 밤에 산길을 걷는 것은 무섭습니다. 특히 상엿집과 어른들의 말씀에 귀신이 나온다는 곳을 지나치다 보면 늘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묘지가 길 가까이에 있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런 길을 걷는다고 하면 기분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변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음습한 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 길밖에 없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어쩔 수 없이 지나가지만 다른 길이 있다면 생각이 다릅니다. 좀 멀다 싶어도 그 길을 피해 마음 편한 길을 택합니다. 마음이란 게 뭐 좀 간사한 것일까요. 아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고장에는 공원이 많이 있는데 나는 주로 두 곳을 이용합니다. 이유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양쪽 다 건널목을 한 번 건너면 초입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운동 겸 산책 삼아 자주 갑니다. 어렸을 때 이웃집 친구네 집을 드나들 듯 말입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이나 간 일도 있으니 자주라는 말이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공원에 들어서면 아무 길이나 발길이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변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골에서처럼 가고 싶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로 나뉘었습니다.


내 발길이 저절로 찾아가는 곳은  바닥이 고르지 않고 좁습니다. 산뜻한 맛도 없습니다. 햇빛도 잘 들지 않습니다. 남 보기에는 별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가도 이곳을 통해 집으로 가거나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나는 이 길을 사랑합니다. 길이로 보아 백여 미터 남짓한 거리입니다. 작은 언덕의 비탈을 돌아나갑니다. 인공으로 조림된 잣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유년 시절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시골의 정취와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코가 뻥 뚫리는 듯 신선함이 달려옵니다. 산속 정취가 배어있어도 상엿집이나 귀신과 마주할 일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이곳을 지나치다가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는 되돌아섭니다. 오던 길을 따라 걷습니다. 빗방울이라도 맞은 양 하늘을 바라봅니다. 괜히 이 나무 저 나무를 손으로 두드려 보고 어루만지기도 합니다. 잣나무의 가지가 잘려 나간 곳을 잠시 살펴봅니다. 내가 어려서 낫에 손을 베였을 때 흘린 피와 상처를 생각합니다. 색깔과 위치가 다를 뿐입니다. 나무의 하얀 진이 피부를 보호하려는 듯 배어 나와 굳어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젖을 먹다 토해서 앞자락에 흘린 것처럼 옹이 부분이 희게 얼룩져 있습니다.


소나무 가지는 잣나무와 별로 다를 것이 없지만 배어 나온 송진의 색깔이나 모습이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맑은 조청이 굳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직 덜 굳은 액체가 손에 묻기라도 한다면 그 끈끈함이 기분을 나쁘게 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비누로 씻지만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공을 들여 씻거나 여러 번 같은 짓을 되풀이해야만 합니다. 나는 어려서 이미 알고 있기에 손을 대는 일은 없습니다. 눈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아팠겠다. 너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사람들의 마음이란다.”


나무 자신에게는 진정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이익에 치우친 생각일 뿐입니다.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옷을 입힌다고 해서 그들이 좋아할지는 모릅니다. 생각을 바꾸어 보면 옷이나 미용이 부담스럽다거나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릅니다.


지난가을에는 이 길을 네 번이나 왔다 갔다 했습니다. 나와 마주치는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이었기에 마음 놓고 혼자 중얼거리고 몸을 흔들고 비틀기도 하며 부자연스러운 행동도 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음악이 나 자신을 잠시 잊게 해 주었습니다.


그저께와 어제는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봄비 치고는 꽤 많은 양입니다. 오늘은 그만 내릴 거라고 했는데 건널목의 신호등 밑으로 우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출근 시간입니다. 왠지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이틀 동안 바깥바람을 쐬지 못한 이유인지 모릅니다. 오전에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면 기분 전환을 위해 나가야겠습니다.


우산요, 이런 날은 내 오솔길을 걷기 위해 우산이 필요합니다. 큰 것으로 말입니다.


‘후드득, 후드득.’


불규칙적으로 내리치는 빗방울은 북이나 드럼 소리만큼 우산 속의 울림을 강하게 만듭니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한꺼번에 울리는 타악기의 소리는 내 심장을 요동치게 합니다. 나는 빗방울 소리를 좋아합니다. 그 소리가 그 소리일 것 같지만 조금만 신경을 쓰면 완연히 다름을 알게 합니다. 인공의 소리가 아닌 자연과 어울림입니다.


나는 아내의 꾸지람을 각오해야 합니다. 옷이 젖고 운동화가 흙투성이가 될 것입니다. 내 발가락을 감싼 양말은 배가 부르도록 물기를 흠뻑 끌어안겠지요. 빗방울의 연주에 취해 가는 길에서 오는 길에서 오락가락할 것입니다. 지난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그리고 겨울에도 오솔길을 맴돌았던 것처럼. 감흥은 있어도 오선지 없는 오후입니다. 빗방울 연주, 뭐 발걸음 따라 때마다 다른 것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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