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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3. 2024

2021 그날

57. 지나가는 것들 20200528

‘「엄마는 해녀입니다」 그림책을 읽고.’


제주도를 처음 찾은 것은 사십 년 전입니다. 비행기가 아닙니다. 목포에서 출발하는 여객선입니다. 돌아올 때는 태풍을 등에 지고 떠밀려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내가 살던 고장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동화 속의 세계에 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안 가까이에서 직접 해녀들의 물질을 보았습니다. 테왁이라는 바구니를 만져보고 숨비소리도 들었습니다. 그 음향은 휘파람과 같은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누군가는 돌고래의 숨소리와 닮았다고 했습니다.


한 해녀는 수확한 해산물들을 팔기 위해 나에게 성게알 맛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 개도 아니고 서너 개쯤으로 기억됩니다. 숨비소리는 그들의 생명줄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후입니다. 성게알을 거저먹었다는 것이 한동안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후 제주도로 여행을 한 것은 두 번입니다. 긴 간격을 두고 가다 보니 그때마다 제주도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해녀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자연의 훼손도 늘었습니다. 제주도만 그런 것은 아니어도 사람들의 욕심에 의해 달라진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제주도의 해녀들에 관한 그림책을 보면서 새삼 지난날을 떠올렸습니다. 내 생활과 견주어 보게 됩니다. 일상의 반복은 이제나저제나 지루합니다. 특히 생계와 직결되는 경우는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유가 없는 삶입니다.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은 고난입니다.


나도 일상의 반복이 한없이 지루하게 생각되고 짜증이 났던 시기가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규칙적으로 등하교를 반복하는 학교생활, 같은 일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직장의 일입니다. 가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에 발걸음이 주춤거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과는 달리 그 시기를 잘 이겨낸 것에 나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잠시 동경했던 내가 다시 찾았던 직업이 전의 분위기와 비교하여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기계를 다루는 것과 책을 만지는 것은 완연히 다른 분야입니다. 낯섦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탈출을 시도하려 한 이유는 다른 세상의 꿈이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바뀐 직업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또 다른 일탈을 꿈꾸었지만, 긴 고민 끝에 포기했습니다.


내가 한고비를 넘기고 지속되었던 직장의 일이 지금은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습니다. 겉치레에 집중했던 삶이 내 안을 들여다보며 나를 찾아갑니다. 책 속의 인물들을 접하면서 세상을 넓히고 내 안의 생각들을 끄집어내어 글로 써보는 일이 요즈음의 일상입니다. 세련된 문장은 아니어도 나를 표현해 보는 모습이 좋습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의 그림책은 바다에서의 해녀에 관한 일상을 그렸습니다. 이제는 스러져 가는 옛것을 우리의 고유문화로 유지하고 살려내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했던 일상의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국가산업의 빠른 변화는 과거의 많은 것들을 세월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많은 것들이, 시대가 변하면서 이제는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변모했습니다. 생활의 모습 중 음악, 미술, 놀이,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종합 예술들이 어느덧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가운데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가정에서 실을 잦고 천을 짜는 일, 새끼와 노끈을 꼬고 멍석이나 돗자리를 짜는 일, 빗자루를 매는 일 등. 이제는 이런 일들이 우리 눈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일상의 용품들이 새로운 것들로 대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또는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고유문화를 지키려는 방법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시점에서 효율적인 면으로 따져본다면 초라할 수밖에 없지만 문화적 가치에서는 생산성을 초월하기에 보존해야만 합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들에는 제주도처럼 해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해녀가 주목받는 이유는 아직도 그들과는 다른 독특한 옛것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방식, 의복, 도구, 물질의 숙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도 회귀의 본성이 있나 봅니다. 연어처럼 말입니다. 젊어서는 시골에서 탈출했지만, 세월이 지나며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시골 태생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전원생활을 꿈꿉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본성은 자연 친화적이 틀림없습니다. 작중의 인물 중 도회지로 탈출했던 해녀의 딸도 연어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삶을 이어갑니다. 늘 향수에 젖은 삶이었을지는 몰라도 사라져 가는 해녀의 세계를 보존하려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소수의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문화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나요, 연어의 습성은 없습니다. 마의 살이 끼어서 그럴까요.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그냥 훨훨 날아야겠습니다. 물을 무서워하지 않으니 책 속의 인물처럼 거친 파도를 안아볼까요. 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합니다.


‘왜 사람들은 물에 빠져 죽지? 그냥 하늘을 보고 누워있으면 되는데.’


갓난아이라도 된 듯 오늘도 멍청한 생각을 하며 삽니다. 물을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나는 해녀의 대열에 끼어든다며 상군, 중군, 하군 중, 에이! 어림없는 일입니다.


기도합니다. 숨비소리가 평온하도록 늘 바다가 잔잔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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