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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3. 2024

2021 그날

56. 민들레를 찾아서 20210524

민들레를 찾아가는 길은 쉽습니다. 민들레가 살고 있는 제철이면 말입니다. 길이 아니어도 웬만한 곳이면 그 올망졸망한 얼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민들레와는 친숙합니다. 민들레가 나를 친숙하게 여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쪽의 기분으로 말합니다.


나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봄부터는 늘 노란 민들레를 보고 살았습니다. 요즈음과는 달리 가끔 흰 민들레도 보았습니다. 흰 민들레가 토종이라고 합니다. 아는 지인이 노랑 민들레 중에도 토종이 있다며 서양민들레와의 구별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꽃을 만져보기도 했고 홀씨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줄기를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습니다. 내가 불어본 피리 중에 가장 좋지 않게 여기는 재료가 바로 민들레의 줄기입니다. 마땅한 피리를 준비하지 못했을 때 심심풀이 삼아 민들레 피리를 부는데 소리의 맛이 영 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도 잘 만들어지지 않지만, 입에 물고 불어보려고 하면 끝부분이 어느새 갈라져 아래위로 말려 올라갑니다. 소리가 제대로 날 턱이 없습니다. 부는 듯 마는 둥 하다 손도 대지 않고 ‘툭’ 바닥으로 뱉어버립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곧 민들레의 동요도 불렀습니다.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 돌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 저고리/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아가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길가에 민들레도 노랑 저고리/ 첫 돌맞이 우리 아기도 노랑 저고리/ 아가야 아장아장 걸어보아라/ 민들레야 방실방실 웃어 보아라.


갓 배운 몇 안 되는 동요 중의 하나이니 집과 학교에 오가는 동안 자주 불렀습니다.


내가 도회지로 이사를 한 후로는 민들레와 가까이하지 못했습니다. 주위에서 꽃을 쉽사리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민들레에 대해 눈길을 주게 된 것은 올해 봄부터입니다. 갑자기 민들레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관심을 두게 해 준 것은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의 그림들을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사진 위에 짤막한 글씨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림을 설명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글귀도 있습니다. 민들레가 흔해서 그럴까요, 아니면 귀여워서일까요.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빌려온다면 재미있는 글을 붙여 넣을 수 있고 조금만 머리를 쓰면 그림책도 만들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야, 남이 올려놓은 사진보다 내가 직접 찍어서 편집하면 더 좋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것은 바로 사진 편집을 배우면서부터입니다. 비록 몇 시간 배우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대로 잘 사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연습 삼아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찍고 짧은 글을 올려봤습니다. 그럴듯합니다.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평생학습 강좌에 그림책 만들기가 있어 신청했습니다. 강사의 수업 진행에 따라 나는 민들레에 대한 주제로 책을 구성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할머니가 민들레의 이름을 불러주어서 친해지는 내용입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것들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한 일을 또 하고 한 일을 수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쉽게 생각하고 대본을 만들었는데 이에 맞는 사진을 찍고 편집하다 보니 문제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완성하고 보니 군데군데 미비점이 드러납니다.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다시 하기를 반복합니다. 겨우겨우 초본을 만들었습니다.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하는 모임방에 매일 한 장면씩만을 올리고 반응을 살폈습니다.


처음에는 ‘좋아요’를 하고 응원을 보내는 분들이 몇 분 있더니 점점 숫자가 줄어듭니다. 그림책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내가 만든 것이 서투르기 짝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모일 기회가 있으면 평을 들어보고 싶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임 자체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화면만으로 의중을 떠보는 셈이니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한 편의 짤막한 장면과 글을 만드는데도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데, 장편소설을 쓰거나 대하소설을 쓰는 작가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 심정을 이해할 듯합니다. 한 편의 책을 내놓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고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종종 그런 말을 들을 기회가 있었기에 마음에 맞는 장면과 글의 구성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생각입니다. 찍고 쓰고 고치고 고치다 보면 곧 완성되리라 기대합니다.


어제도 마음에 맞는 민들레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 곱던 민들레들이 숨을 죽였습니다. 어느새 꽃은 지고 홀씨가 되어 하늘을 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꽃을 보며 내일이나 모레쯤 와야지 했는데 그들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간신히 한 장면을 찍어오긴 했습니다. 비가 한줄기 내리면 민들레가 다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겠지요.


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들이 나를 도와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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