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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Nov 23. 2024

2021 그날

59. 아마추어 20210601

나는 요즘 민들레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들여다봅니다. 토종 민들레, 서양민들레에 관한 관심은 없습니다. 오로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요즘이라고 말은 했지만, 민들레가 피어나기 전부터 노랑을 머릿속에 넣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은 풀이 자랄 틈이 없어요. 어찌나 자주 깎아대는지.”


아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푸념했습니다.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공공근로’네, ‘공공 일자리’ 지원이라 하는 말이 나오면서부터입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생각지도 않은 일자리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고 늘어났습니다.


눈이 녹고 잔디가 좀 돋아날 즈음이 되자 공원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요란합니다. 풀 깎기 작업입니다. 가을에는 공원의 산책로가 시끄러웠습니다. 풀과 낙엽을 제거한다고 제초기와 송풍기를 요란하게 돌렸습니다. 어쩌다 빗자루가 필요 없는 공원이 되었습니다. 어찌나 깨끗한지 맨발로 걸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깨끗해서 좋기는 한데 정겨움이 사라졌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내 본래의 뜻과는 달리 본질을 흐리는 말만 했습니다.


한 가지 어설픈 마음을 먹은 게 미안합니다. 민들레가 돋아나려면 기다리는 시간이 더 필요한데 공원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일입니다. 낯 모르는 사람과 민들레 이야기를 했는데 그 후 이십여 일 지나자, 이곳저곳에서 노란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성급했습니다. 민들레에 관한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사진을 빨리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흩트려 놓은 게 분명합니다.


공원을 이곳저곳 다니며 원고에 맞게 민들레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꽃뿐만 아닙니다. 잔디밭, 호수, 집에서 가까이 있는 건널목과 신호등, 새, 벌, 개미 등입니다. 어설프게 사진을 편집했습니다. 글도 짤막짤막 올렸습니다.


반응을 보아야겠습니다. 자화자찬에 혼자 즐거워하다 보면 검증이 되겠습니까. 내가 활동하는 수필 반원들에게 자랑도 할 겸 평을 듣고 싶어 사진과 글을 하루에 한 장씩 올렸습니다. 사전에 평을 부착하거나 의중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읽고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 명은 관심을 두고 나름의 평을 해주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모두 좋다고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할 의향이 없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얼굴 붉힐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그림책 만들기 반에 올려봤습니다. 부족하다 싶은 그림과 글을 조금씩 수정했습니다. 사진을 본 한 반원은 내 사진 편집이 부러웠나 봅니다.


“사진 편집을 배우고 싶어요.”


자랑거리가 못됩니다. 왕초보입니다. 겨우 여덟 시간 동안 배웠을 뿐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이라고 하면 좋을 듯합니다. 한계를 조금만 벗어나면 분명 눈을 감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처음 치고는 결과는 좋습니다. 강사가 끝머리에 메모를 남겼습니다.


“슬프고도 아련합니다. 울림이 있습니다.”


그림책을 발간해 보라고 합니다. 그는 내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스무 장의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놓고 보니 아직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편집 기술이 부족하니 애써 만든 것들의 사진이 깨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화면에 맞게 여러 가지 조정해야 할 것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작업 프로그램과의 호환이나 연결을 몰라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다 깨졌어요. 확대하며 화질이 지금 같지 않아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멍청한 얼굴을 하자 고화질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손수 조정을 해주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그 많고 싱싱하던 민들레들이 홀씨를 날리며 사라집니다. 걱정했습니다. 민들레가 없어지기 전에 마음에 맞는 사진을 확보해야 합니다.


어제는 질척대던 비가 멈췄습니다. 인도와 공원에 간간이 보이던 민들레가 앞을 다투어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갓난아기의 작고 귀여운 얼굴입니다. 며칠 동안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겨야겠습니다. 되도록 많은 민들레의 모습을 남겨야 합니다.


편집하다가 잠시 멈췄습니다. 스무 장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수천 장은 찍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고 하지만 그 많은 개똥이 다 약에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것이 약에 쓰일 것입니다. 많으면 무엇합니까.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물건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살이가 뭐 거저 이루어지는 것이 없고 보면 부지런함에 기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뭐가 잘 안 돼요. 안 맞아요?’


물 한 컵 마십니다. 좋은 작품을 얻기 위해 찾아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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