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립니다. 올해 5월은 예년에 비해 비가 잦습니다. 이 비가 유월에 접어들면서도 떠나지 않고 따라붙었나 봅니다. 첫날에도 내렸습니다. 덕분에 아직은 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긴팔을 입고 겉옷도 걸쳤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어제와는 달리 며칠 동안 궁리한 것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입니다. 더구나 그림책 강사로부터 기분 좋은 문자까지 받았습니다.
“내용이 좋은데 왜 지우셨어요. 반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내렸던 사진들을 모아 다시 올려주세요.”
원래는 다시 올릴 생각은 없었고 맛보기였으니 이만 지워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 글과 사진이 수업 시간에 이야깃거리로 펼쳐진다는 것이 기대됩니다. 강사와 몇몇 반원들은 내내 내 초고의 작품에 관심을 기울였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그동안 열심히 생각하고 그에 맞는 풍경을 담은 결과라며 호응을 해줍니다.
나는 또 다른 구상을 하고 준비 중입니다. 전문가는 못 되니 구상은 했지만, 시일이 오래 걸릴 거라고 예견합니다. 마음 같아서야 며칠 내에 끝내고 싶지만 식견이 높은 사람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나 같은 초보자가 감히 넘볼 일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어림잡아 일 년으로 정했습니다. 계절을 담아야겠습니다.
연못의 일상입니다. 주인공 붕어가 자신의 마을에서의 세상과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생활상을 그려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목적 없이 찍어 모아둔 사진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가을 사진 몇 장, 겨울 사진 몇 장이 있습니다. 연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며 찍은 것들을 지우지 말걸.’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생각과는 달리 마음먹었던 일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컴퓨터를 다루는 일이 마음같이 쉽지 않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겨우 어깨너머로 습득하다 보니 하고자 하는 일이 더디고 멈추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가끔은 내가 뻔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며 아무에게나 매달려 물어보고 배우면 좋을 텐데. 나는 마음이 소심한 편입니다. 질문을 하고 또는 물어보면 좋은데도 망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나는 노력에 비해 학습의 성과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 예가 영어입니다. 열심히는 한다고는 하나 늘 제자리입니다. 귀에 담은 것을 써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마음이 바뀌고 맙니다. 그렇기는 해도 외국 여행 중의 몇 마디의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습니다.
“여보, 바람 좀 쐬고 와야겠어요.”
“운동화가 샌다며 뭘 나가요. 좀 쉬지.”
신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긴 우산을 들었습니다. 미리 생각해 둔 게 있습니다. 오늘은 연못 안의 분수 장면을 찍어야겠습니다. 며칠 동안 연못을 관찰했는데 녹조로 인해 마음에 맞는 모습을 잡지 못했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호수는 맑고 투명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파란 하늘이 연못에 깊이 내려앉았습니다. 새들과 잠자리까지 물속에서 그림자의 날개를 펼쳤습니다. 요 며칠 사이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담아낼 것이 없습니다. 사진 찍기를 잊고 잠시 연못에 눈을 팔았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는 날이니 잘만하면 어울리는 풍경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으로 들어섰을 때입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뿜어대는 분수의 물줄기가 보입니다. 잘 됐습니다. 천천히 가도 됩니다. 평소에도 한참씩이나 솟구쳐 올랐습니다. 비 맞은 장미가 싱싱해 보입니다. 맑은 날과는 또 다른 정취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받쳐 들고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전문가인가 봅니다. 망원렌즈가 달린 긴 카메라가 탐스러운 장미와 입을 맞춥니다.
“빗방울이 매달려 있어서 느낌이 좋아요.”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분위기를 받쳐주네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았습니다. 나는 이들과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습니다. 사진을 찍는 방법을 관찰할 목적입니다. 그들이 장미원을 벗어났을 때 나도 그들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이제는 호수의 경치를 찍어야겠습니다. 분수가 비와 함께 섞여 하늘로 올랐다 곤두박질합니다. 서로 누가 먼저 호수의 물을 때리나 시합합니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잡을 때입니다. 갑자기 분수가 사라졌습니다.
‘뭐야?’
붕어와 잉어나 찍어야겠습니다. 자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분주한 발소리를 내자 고기들이 몰려왔습니다. 먹이를 주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틀렸습니다. 물이 흐리기도 하고 날씨가 흐리니 고기들의 모습이 짙은 안갯속에 가물거리는 초가지붕처럼 희미한 자취만 남깁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안 되겠습니다. 한두 장면을 생각했는데 이마저도 포기해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서는데 쏴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분수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부지런히 장소를 옮겨가며 몇 장 찍었습니다.
집에 와 점검을 해봅니다. 생각대로 꼭 두 장을 남겨야겠습니다. 나머지는 휴지통으로. 그렇게 저렇게 작품은 완성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