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4.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20230104

by 지금은

길을 지나다 보니 봉오리를 맺은 동백꽃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가야 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꽃 가게입니다. 터질 듯 통통한 봉우리는 붉은 속내를 내보입니다. 톡 건드리기라도 하면 곧 터질 것만 같습니다.


글쓰기 동아리에 갔더니 젊은 문우가 한숨을 쉬며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습니다.


“세월은 가는데 언제쯤이나 좋은 글을 쓰게 될꼬.”


“뭘 그렇게 조바심을 내요. 아직 앞길이 창창하구먼.”


한 달 후면 복수초가 눈 사이로 노란 얼굴을 드러낼 것입니다. 날이 풀리며 봄꽃들이 활개를 치기 전 더워, 더워하며 다시 땅속으로 숨어듭니다. 아무리 오래가는 꽃이라도 사계절 내내 피지 않습니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여름에는 장미, 나팔꽃,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 국화가 있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전에 말한 복수초를 비롯하여 동백꽃과 수선화가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 다른 것처럼 사람에게도 차이가 있습니다. 봄에 피는 꽃처럼 이른 나이에 전성기를 맞기도 하고 가을꽃처럼 늦은 나이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74세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이듬해인 2022년 외신이 선정한 최고의 드라마 '파친코' 등에 출연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습니다.


일본의 시인 시바다 요코는 90세가 넘은 나이에 시집을 출간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그의 시중 한 편을 소개합니다.


<약해지지 마>


있잖아, 불행하다고/한숨짓지 마//햇살과 산들바람은/한쪽 편만 들지 않아//꿈은/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살아 있어 좋았어.//너도 약해지지 마.


남의 글을 고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지만, 몇 자만을 상황에 맞게 고쳐봅니다.


‘불행하다고’를 ‘마음같이 되지 않는다고.’


느지막이 성공을 거둔 예는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내가 즐겨 읽은 책 중에는 박완서 작가도 있습니다. 작가 또한 늦은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한 꽃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정도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 년 중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복수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장수와 영원한 행복을 염원하는 꽃말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으니, 다음을 기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꽃 중에 들국화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들국화라는 단일 종은 없습니다. 들에서 피는 국화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통칭 들국화라 불리는 꽃 중 대표적인 것은 구절초이고, 쑥부쟁이·해국·감국·산국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중에 구절초의 꽃말은 고상함, 밝음, 순수, 우아한 자태, 어머니의 사랑' 등 다양합니다. 고상함이나 우아한 자태는 같은 뜻으로 묶어준다면 '밝고 순수하고 고상한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방에 의하면 구절초는 맛이 쓰지만 순하고 생명력이 강합니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봄철부터 야생에서 어려움을 겪어냈습니다. 작은 꽃이 있는가 하면 큰 꽃이 있고 빨강 꽃이 있는가 하면 노랑, 하양, 자주색 꽃도 있습니다. 각자의 생김새나 개성에 따라 세상을 살아갑니다. 일찍 핀 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꽃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다른 동식물도 같은 이치가 아닌가 합니다.


“뭘, 걱정입니까. 내가 걱정이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그들의 나이보다 두 곱절만큼 많은 것은 틀림없지만 꼭 나이를 떠올려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보면 앞날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입니다. 자기와 함께 출발한 동료들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아니 문학계에 이름을 올렸는데 혼자만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추나무가 생각납니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잎이 늦게 나옵니다. 4월 말이나 5월 초순입니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나 나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잎이 없는 나뭇가지를 꺾어봅니다.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입니다. 하지만 잎을 피우면 곧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합니다. 밤이나 감, 배 등 가을의 과일나무들이 입에 오를 때 함께 선을 보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은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