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7. 팽 이

by 지금은

팽이를 깎았습니다. 열심히 깎았습니다. 정성 들여 깎습니다. 매일 깎습니다. 호야의 팽이는 동주 것보다 잘 돌지 않습니다. 동주의 팽이는 자기 아버지가 깎아 준 것이라서 모양도 예쁘고 잘도 돕니다. 한 번만 돌려보자고 졸랐습니다. 빌려주지를 않습니다. 땅 위에서도 잘 돌고 얼음판에서도 잘 돕니다. 호야의 팽이는 정은이 것보다도 잘 돌지 않습니다. 동주는 나쁩니다. 제 팽이를 정은이한테만 돌려보라고 말합니다. 나중에는 팽이까지 주었습니다. 호야는 열 번도 더 돌려보자고 부탁했습니다. 빌려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서 동주 팽이보다 잘 도는 팽이를 만들 생각입니다. 매일 깎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호야의 팽이가 동주의 팽이보다 더 잘 돈다는 것을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동주는 팽이의 밑 부분이 닳으면 저희 아버지에게 부탁합니다. 항상 새 팽이를 돌립니다. 동주를 꼭 이기고 싶었습니다.

“치 팽이 하나 가지고 재지 말라, 나도 멋진 팽이를 만들 수가 있으니까.”

“그래 좋아 멋진 팽이 만들어 봐.”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촌한테 팽이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가 혼만 났습니다.

“녀석, 그러지 않아도 바쁜데 방학이니 팽이 돌리고 싶으면 만들면 되지, 남자가 되어서는.”

엄마에게 부탁해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 스스로 해결해야지.”

엄마도 그 이후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에이, 다른 아버지들은 해 달라고 하는 것을 잘해 주는데.’

동주와 함께 놀 때마다 약이 오릅니다. 팽이를 돌리면 동주의 것보다도 항상 일찍 죽습니다. 이럴 때마다 정은은 동주의 편만 들어줍니다.

‘이제는 동주와 놀지 말아야지, 함께 놀면 속만 상하니까.’

며칠을 혼자 놀았더니 심심합니다. 동주가 새 팽이를 가지고 놀자고 왔습니다. 같이 놀다가는 짜증이 날 것만 같습니다. 숙제를 한다고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찢어진 창호지 틈으로 내다보았습니다. 마당에서 팽이를 몇 번인가 돌려봅니다. 분명 자랑을 하고 싶어서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보아주는 사람이 없자 재미가 없는 모양입니다. 방문을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팽이를 집어 호주머니에 넣고는 가버렸습니다. 호야는 동주가 가버리자,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무를 찾아 두엄간 옆에 거꾸로 세우고 말뚝을 박았습니다.

‘왜 박았느냐고요? 그야 팽이를 깎으려고요.’

낫을 들고 말뚝의 둘레를 돌면서 옥수수 껍질을 벗기듯이 차례로 깎았습니다. 톱으로 밑동을 잘랐습니다. 모양이 형편없습니다. 중심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잘린 부분도 삐뚤게 되어 버렸습니다. 두 손으로 잡아 힘껏 돌렸습니다. 뒤뚱뒤뚱하더니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쓰러집니다.

다섯 개나 깎았습니다. 쓸 만한 것은 그중 하나도 없습니다. 괜히 손가락만 베었습니다. 엄마 몰래 반지 그릇을 뒤졌습니다. 천을 찾아내어 손가락을 매고는 호주머니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래도 왼손가락을 다쳐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오른 손가락을 다쳤으면 분명히 발각되어 혼이 날 것입니다.

‘언제냐고요? 밥 먹을 때지요.’

아침이 되자 톱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팔목보다 조금 굵은 참나무를 잘라 왔습니다. 바싹 마른 가지입니다. 참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무겁습니다. 한번 돌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잘도 돕니다. 동주가 버린 팽이를 찾아서 잘 보면서 깎았습니다. 천천히 길이를 대보고 깎았습니다. 호야가 생각해도 잘 깎은 것 같습니다. 중심도 잘 맞습니다. 방 안에서 돌려보니 무겁기는 해도 잘도 돌아갑니다.

‘동주 자식, 팽이를 쳐보자고 해도 안 빌려주고.’

“동주야, 놀자.”

친구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왔습니다.

“팽이 시합하자.”

“뭐라고 했는데.”

“팽이 시합하자고 그랬다.”

“팽이?”

“그래.”

동주는 얼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자신 있다는 표정입니다.

“너 먼저 돌려.”

“아니 너 먼저 돌려봐.”

“너.”

“너.”

서로 미루다가 똑같이 돌리기로 했습니다.

“시작.”

동주의 팽이는 중심을 잡고 잘도 돌아갑니다. 팽이채로 때릴수록 윙윙 소리를 내면서 잘도 돕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호야의 팽이는 처음부터 중심도 못 잡고 비틀댑니다. 팽이채로 치자 비틀거리다가 이내 쓰러졌습니다.

‘이상하다, 방에서는 잘 돌았는데.’

다시 해보았지만 틀렸습니다. 동주가 갑자기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집으로 달려와서 팽이 깎은 나무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너무너무 속상합니다.

“녀석, 울기는 남자 녀석이.”

“동주가…….”

“에이, 그럴 일이 있어요. 장군 팽이를 깎아 줄게.”

삼촌이 헛간에서 참나무를 찾아서 말뚝을 박았습니다. 삼촌의 손은 마술 손인가 봅니다. 몇 바퀴 돌자 멋진 팽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삼촌, 톱.”

삼촌은 톱을 받아 쥐고 밑 부분을 잘랐습니다. 밑 부분도 윗부분과 똑같이 깎았습니다. 아주 정성껏 깎았습니다.

“돌려봐.”

팽이가 제자리에 서더니 팽이채로 때려 주자 윙윙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내일은 문제가 없습니다. 소리만 들어봐도 이겼습니다. 장군 팽이니까 말입니다.

삼촌의 솜씨를 배워야 합니다. 호야는 겨울 방학 내내 팽이만 깎았습니다. 백 개도 넘습니다.

정은이가 숫자를 세며 색연필로 팽이에 번호를 썼습니다. 1, 2, 3,……109

“팽이 박사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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