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감나무
호야는 나무 오르기를 잘못합니다. 동주보다도, 더구나 무서움을 잘 타는 있는 정은이 보다도 못합니다. 상수리나무나 느티나무에 오르기를 하면 항상 꼴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모르는 비밀이 있답니다. 바로 감나무에 오르기입니다. 가을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호야네 뒤뜰에 있는 감나무입니다.
나무 타기를 잘하지 못하면서도 호야는 감나무에 오르면 꼭대기로만 올라갈까요.
‘왜냐고요?’
감 먹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감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호야의 나무 타기가 시작됩니다. 감을 따서 우릴 때쯤이 되면 사흘에 한 번씩은 올라갑니다.
‘할머니 심부름하기 위해서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할머니는 위험하다고 그런 일은 아예 시킬 생각도 하지 않으십니다. 감을 딸 일이 있으면 삼촌이나 아버지 그리고 바쁘실 때는 할머니가 직접 전지를 가지고 땁니다. 하늘을 계속 보아야 하니 목이 아프다고 하시기도 합니다. 호야가 거들어 드리려고 하면 ‘에구’ 꼬마가 뭘 한다고 하시면서 장대를 주지 않습니다. 호야는 해봐야 서너 개 정도를 따면 그만입니다. 긴 장대는 무겁고 휘청거려 중심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고개를 젖히는 일은 보통이 아닙니다.
‘호야는 익지 않은 감을 좋아할까요?’
아닙니다. 누가 떫은 감을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나 눈을 감고 생각을 해보세요. 호야는 감이 붉게 물들 무렵이면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고추잠자리가 감나무 주위를 맴돌 때쯤이랍니다. 중간 높이까지 올라가서 제법 붉게 물든 감을 만져 보고 감의 꼭지 부분을 뚝 꺾습니다. 꼬챙이에 꿰어 햇볕이 잘 드는 곳에 걸쳐 걸어 둡니다. 사흘이 지나면 다시 감나무에 올라가 붉은 감을 만져봅니다.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의 가지를 꺾어서 먼저와 같이 걸어 둡니다. 다시 사흘 후에 또 올라가 다른 감을 꺾습니다. 그러다 보면 감나무의 잎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리고 감은 햇볕을 잘 받게 됩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겪어 놓은 감을 만져 봅니다. 한입 물어보고 잘 익었다고 생각되면 맛있게 먹습니다. 다시 또 다른 감을 따서 걸어 둡니다. 사흘 후에 올라가 먹고 또 꺾어 가지 사이에 걸어 놓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감나무의 잎은 거의 떨어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호야는 어느새 한 뼘씩 한 발짝씩 높이 올라갑니다.
할머니가 장독대에 오셨다가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호야를 발견하셨습니다.
“호야야, 거기서 뭐 하니?”
“타잔 놀이요.”
“이 녀석, 위험하니 어서 내려오너라.”
다음부터 호야는 할머니의 눈치를 보아 가며 몰래몰래 올라갑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감은 점점 맛있습니다. 새총같이 가늘고 높다란 가지에서 감을 꺾었습니다. 바람이 살랑살랑 주위를 스쳐 가자, 가지가 흔들립니다. 중심을 조금이라도 잘못 잡으면 큰일 납니다. 바람이 불자 나뭇가지와 함께 몸이 기우뚱했습니다. 호야의 이마에서 땀이 송송 뱄습니다. 할머니가 이 모습을 보시고 말렸지만,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삼촌이 타일렀습니다. 엄마는 구슬렸습니다. 아버지는 종아리를 때리셨습니다. 그렇지만 감나무는 호야의 입맛을 여전히 유혹합니다.
할머니는 호야가 걱정되어 할 수 없이 감나무 밑동에 똥칠했습니다.
‘요 녀석 이제는 감나무에 못 오르겠지?’
하지만 사흘 후에 또 올라갔습니다. 담장 위에 긴 막대를 가지에 걸치고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갑니다. 할머니는 숨을 죽이고 숨어서 보셨습니다. 소리를 치면 호야가 떨어질까 봐 걱정되셔서 그러시겠지요.
다음날부터 감나무는 홍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삼촌이 장대로 감을 모두 땄습니다. 까치밥 하나만 남았습니다. 호야는 감나무를 보며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까치밥까지 먹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까치가 배고플 것만 같습니다.
“호야야, 까치밥은?”
호야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요 녀석, 그래도 까치를 위할 줄은 알아서.’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며 허리춤에 감추어 둔 홍시를 내밀었습니다.
“나무에 오르는 것은 위험하단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던데.”
할머니는 호야가 이 세상에서 제일 나무를 잘 오르는 줄로 알고 계시나 봅니다. 호야는 동주나 정은에게 감나무에 오르는 일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고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