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작은 아이

9. 마룻바닥 윤내기

by 지금은

넷째 시간이 끝나자, 담임선생님이 부르십니다.

“호야야, 이리 와.”

“예”

“집에 가서 기름 가져와.”

“예”

“여기에 쓰여 있는 대로.”

조그만 쪽지에 한자와 한글로 적힌 종이를 내미셨습니다. 동주와 호야에게 몇 자 적어 보냅니다. 글씨를 보니 한자는 알 수 없고 한글은 읽을 수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말한 기름을 호야 편에 보내 주시오, 그리고 오늘 좀 늦게 퇴근합니다.

선생님이 점심때 심부름을 시키니 호야는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가면 혹시라도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동주를 꾀어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신나는 날이지?”

“그래, 점심도 먹을 수가 있고.”

어쩌면 가마솥에 식은 밥이라도 김칫국에 말아먹을 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엄마는 항상 점심을 싸 주지 않습니다. 밥이 모자라고 반찬을 싸 줄 만한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내년에는 꼭, 내년부터는 꼭 싸줄 거라고 하십니다. 할머니가 점심을 잡수실 수가 없으니 우리 식구 중에 누가 감히 점심을 먹겠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동주는 점심을 먹을 게 틀림없습니다. 호야네 보다는 살림살이가 낫습니다. 동주는 아침에 엄마가 바쁘다고 점심을 안 싸 주셨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드나 봅니다. 너 때문에 점심을 먹게 되었다고 좋아합니다. 둘이 논두렁을 타고 산골짜기를 따라 달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입니다. 집에 가는 동안에 힘이 하나도 들지 않습니다.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면은 힘이 저절로 납니다.

선생님 댁에 들렸습니다. 사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이상하다, 사모님이 계셔야 하는데.’

기다렸지만 오시지를 않습니다.

“야, 우리 집에서 가져오라고 하셨나 보다.”

“글쎄.”

기다리다 못해 우리 집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이 사시는 바로 윗집입니다. 고모가 빨래하다 말고 호야와 동주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희들 왜 가방도 없이 집에 왔니?”

“선생님이 기름 가져오래.”

“그래?”

쪽지를 내밀었습니다.

“며칠 전에 말씀하신 적이 없는데, 선생님 사모님께 써 준 편지 같다.”

“사모님은 안 계시는데.”

“그래, 그런데 기름은 왜?”

“모르겠어.”

“그럼 온 김에 점심이나 먹고 가라.”

“늦을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그러자 내 눈치를 보고 동주는 점심을 먹으러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김칫국에 보리밥을 조금 말아서 후루룩 마시듯 먹었습니다. 고모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종지에 기름을 따라 주었습니다.

“이상하다, 웬 기름을 달라고 그러실까, 공부 가르치는 데 쓰시려고.”

기름을 받아 들고 조심스레 동주네로 갔습니다. 잘못하면 기름이 쏟아질지도 모릅니다. 동주도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저희 엄마를 보고는 기름을 달라고 했지만, 그 귀한 기름이 어디 있느냐며 주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지?”

“사모님이 안 계셔서요.”

“그럼, 이 기름은?”

“우리 고모가 주셨어요.”

“왜?”

“사모님이 안 계시다가 하니까 고모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녀석들, 그러면 그냥 올 것이지. 점심은 먹었니?”

“예.”

“우리 집에 가서 기름 가져오라고 했더니만, 녀석들이 자기 집에 가서 기름을 가져왔구먼. 바닥이 껄끄러워 너희들 맨발에 안 좋을까 봐 칠을 좀 하려고 했는데, 생각한 김에 내일은 대청소해야겠다. 수세미를 만들어 와.”

며칠 있다가 교장 선생님이 호야를 찾으셨습니다.

“호야가 누구야.”

아이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바보, 멍청이예요.”

“바보 멍청이가 아니라 똑똑한 친구입니다. 호야 덕분에 너희 반이 일등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러자 반 아이들도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앞으로는 호야를 업신여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요.”

교장 선생님이 나가시자 호야가 말했습니다.

“내일 수세미 큰 걸로 만들어 와.”

“왜?”

“바닥에 물 뿌리고 수세미로 북북 문지르게.”

“대청소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이 바보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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