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여행 20210725
‘몸이 떨릴 때는 늦었으니, 마음이 떨릴 때 가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가끔 듣는 말입니다. 여행사에서 여행을 부추길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젊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습니다. 요즈음은 자고 일어났을 때 더 공감합니다. 어제는 예상보다 좀 많이 걸었다 싶었는데 몸의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터인데 이제는 나이를 실감합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이와 관련된 책도 읽지만,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그 화면에는 낯선 곳이 주로 소개되지만, 때로는 내가 다녀온 여행 장소가 눈에 비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보다 마음이 앞서 길 안내를 합니다. 보지 않아도 이미 입력된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공항, 벤치, 음식점, 만난 사람들, 케이블카, 시가지, 산의 정상……
여행기를 보다가 중얼거렸습니다.
“삶을 다시 시작한다면 외국어를 전공하고 싶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아내 역시 여행에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국으로 여행을 갔다가 몇 차례 어려움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원인은 의사소통이 안 돼서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현지에서 살 때 등입니다.
나는 요즈음 빠뜨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영어방송을 봅니다. 왕초보 영어 회화입니다. 매일 아침 한 시간을 생활 일정표에 넣은 이유입니다. 외국의 여행을 대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내 영어 실력이 크게 발전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도 잊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입니다. 매일 한 시간씩 영어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하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영어를 꽤 잘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원인은 내가 몰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몰입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가 소개하는 것은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영어입니다. 나에게 이 프로그램이 좋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자랑삼아 이야기하지만, 그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 회화를 해볼까요.’ 하고 친근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도전을 해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요, 당신이 나보다 한 수 위이군요 하는 마음으로 그의 실력을 인정해 버리고 맙니다. 구태여 남의 실력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긴 일이 있습니다. 한 번은 터키, 그리스를 여행하려고 했는데 대상포진에 걸려 두 달이나 늦춰졌습니다. 다음으로는 코카서스 지방을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연기가 아니라 아예 포기했습니다. 내 의지도 있기는 했지만, 여행사에서 먼저 그만둘 것을 권했다. 형님 댁과 어렵게 일정을 맞췄는데 못 가게 되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형님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명령인 걸 어떻게 하겠나, 다음에는 모든 일 제쳐놓고 가기로 하지.”
현재 상황으로는 코로나19의 소멸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음이야 이 불안한 세상이 빨리 극복되기를 바라지만 희망처럼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좋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동안 여행의 요령을 더 익혀야 합니다. 몰입으로 외국어 실력도 더 발전시키기로 했습니다.
'마음은 계속 떨려도 좋은데 발걸음은 떨리지 말아야지.'
삶은 움직임의 연속입니다. 길게 가려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복더위가 아니랄까 봐 밤새 열기가 대단합니다. 땀이 앞가슴골을 따라 또르르 굴러갑니다. 잠시 ‘여행을 떠나요’의 노래를 들으며 몸의 열기를 식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