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창문 20210726
창문은 움직이는 액자입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창틀을 의지하여 안과 밖을 이어줍니다. 마음의 소통 창구도 됩니다. 하루의 변화를 보여주고 계절의 바뀜도 알려줍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창밖부터 살핍니다. 그 액자 속에는 아침노을이 물들고 있습니다. 산 너머 태양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잿빛 구름이 발그레 물들고 따라서 산도 얼굴을 붉히기 시작합니다. 아직 세수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부끄러움이 묻어납니다. 오늘의 징조는 좋습니다. 맑음입니다. 바람이 옵니다. 휙 커튼을 흔들어 벽으로 밀어냅니다. 보이지 않는 붓 자국이 굴곡을 만들었습니다. 얼굴을 액자 속으로 들이밉니다.
‘세수는 한 거야, 그렇다면 물기는 말려야지,’
창문은 액자입니다. 하루 종일 들여다보아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저 멀리 산이 물러나 있고 하늘이 있고 가로수가 가까이 달려와 멈추었습니다. 터널로 자동차가 숨어들었습니다. 창문은 바쁩니다. 그 많은 그림을 쉴 새 없이 보듬어야 합니다.
창문은 온갖 것들을 품습니다. 사람의 눈을 따라 보이는 대로 빈틈없이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가감이란 없습니다. 사진을 찍듯 있는 그대로 보듬어 안습니다. 슬그머니 놓아주기도 합니다. 골라서 보여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불편한 것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뀝니다. 움직이는 활동사진입니다.'
‘그게 그거지 뭐.’
'
아닙니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귑니다. 나뭇잎이 짙어지고 비가 내립니다. 열매가 맺고 단풍이 듭니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습니다. 액자 속에 다 있습니다. 소리까지도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워질 뿐입니다.
액자는 속이는 게 없습니다.
‘요즈음은 내가 꺼리는 주름살까지도 듬뿍 담았던 걸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나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봐주는 게 없습니다.
오늘은 바닥에 누워 하루 종일 창틀 속으로 다가오는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더위가 한창이지만 찬 바닥에 누웠으니, 피서치고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싫증이 날만 하다 싶으면 그림을 바꾸어 줍니다. 파란 하늘에 그리는 구름입니다. 완성됐다 싶으면 스르륵 옆으로 밀어내고 다른 것들을 불러옵니다.
카메라의 셔터를 몇 번 누르다 그만두었습니다. 그 많은 모습을 보관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장 공간이 없어도 되는 마음속에 넣어두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부담 없이 불러올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동안 하늘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풍경 사진은 더 많이 찍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을 냈습니다. 저장은 했지만 실상 꺼내본 일은 두서너 번 정도입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는 그런 것이 있었나 하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완전한 기억이 재미없을 때도 있습니다. 기억을 되살릴 듯 말 듯할 때가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이런 모습이었나, 아니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가운데 빼기 더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부분, 부분 지우며 끼워 넣고 여백을 살려 새로운 것을 집어넣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공백을 살려 원작보다 더 멋진 그림을 만들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완전한 기억이란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같은 것을 보았으면서도 진술이 엇갈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비슷한 것은 있어도 똑같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복제품이라고 해도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쌍둥이가 똑같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입니다.
어제는 아는 사람이 숨은 그림을 찾으라고 열 마리의 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내 눈썰미를 과소평가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못 찾을걸.”
“뭐, 이런 걸 가지고.”
큰소리친 보람이 있어서인지 삼십삼 초 만에 찾았습니다. 중간쯤 앉아있는 개의 머리에 작은 리본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는 대단한 실력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대단한 것이야 되겠느냐만 이 더운 날에 칭찬 아닌 칭찬을 들으니, 빙수를 입에 문 것처럼 더위가 사라졌습니다.
창틀 속 액자의 그림은 삼십삼 초보다 더 빠른 시간에도 그림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상황에 익숙해진 것인가.
“여보,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참이에요. 목운동도 해야지.”
몸을 일으켰습니다. 창문이 시선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다른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