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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61. 길 위의 인생 20210725

by 지금은 Dec 03. 2024

‘길 위의 인생’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외국의 어느 척박한 자연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가슴 뭉클한 삶입니다. 가끔 보지만 그들의 생활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합니다. 느끼는 감정은 삶이 이다지도 고달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고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되고 곧이어 육이오 전쟁이 있었습니다. 연속되는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입에 풀칠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내가 살던 산촌은 어떠했을까. 마을의 젊은이들은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나무꾼 노릇을 했습니다. 생계의 수단입니다. 낮에는 산을 오르고 새벽에는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나뭇짐을 팔기 위해서입니다. 숯을 굽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중국의 어느 산속의 모습입니다. 등짐을 지고 높은 산을 오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관광지입니다. 산이라기보다 절벽이라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이 찾는 산 정상, 그곳에 있는 절과 상점에 물건을 배달해 줍니다. 그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립니다. 늙은이는 자기 몸집보다 큰 짐을 어깨에 걸쳤습니다. 좁고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한 발 또 한 발, 천 길 낭떠러지 위로 힘을 주어 오릅니다. 빈 몸으로도 숨을 헐떡이는 곳임에도 남에게 힘든 얼굴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여인은 자식의 공부를 위해 등짐을 지고 산을 오릅니다. 한 늙은이는 아직도 힘이 남았다는 생각에 손주의 과잣값이라도 벌어야겠다고 합니다. 봇짐의 무게에 눌려 곧 쓰러질 것 같은 몸입니다. 어느새 이빨은 빠지고 몇 개의 앞니만 입의 입구를 듬성듬성 가리고 있다. 그의 모습이 나에게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지만 그 시간은 짧습니다. 이 시간에 그는 춤을 춥니다. 예사 춤이 아닙니다. 노랫가락에 어울리는 손과 발놀림에 흥이 함께 서려 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는 방법이랍니다. 가파르고 험한 산을 위태롭게 오르면서도 그들은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습니다. 산이 있어 삶이 즐겁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정서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마음이 아파집니다. 머리가 숙어질 뿐입니다.


몇 해 전입니다. 우리나라의 설악산을 오르는 짐꾼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설악산의 길이 직장입니다. 늙을 때까지 지게에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이 시대의 마지막 짐꾼이랍니다. 이제는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고 짐작했던 모양입니다. 역시 산이 있어 감사했다고 말합니다. 삶이 뭔지, 목숨이 원지, 가족은 뭔지 하는 철학적인 고뇌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나를 괴롭히던 잡다한 마음이 사그라졌습니다. 내 생활이 무조건 고마울 따름입니다.


걷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첫머리에서 말한 의식주를 위해서 걸어야 하는 길이 있는가 하면 도전, 여행, 건강을 위해 길을 걷기도 합니다. 도전은 고통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견딜 수 있습니다. 여행하고 건강을 다스리는 일은 설사 어렵다고 해도 앞선 일들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임이 틀림없습니다.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삶이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맞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백 퍼센트는 아닙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냐, 누구에게서 태어났는가도 나에게 영향을 줍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복지가 잘 다져진 시대, 여유로운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출발선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의 환경과 지금의 환경은 ‘천양지차’입니다. 불과 반세기를 넘기자,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는 늘 ‘부모님과 오늘’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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