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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70. 기다림 20210731

by 지금은 Dec 04. 2024

기다림은 늘 지루합니다. 설렘도 있습니다. 기분 좋은 행사일이 다가올 때가 그렇고 약속도 그렇습니다. 며칠 전부터 조바심이 났습니다. 빨리 지나가던 날들이 왜 이렇게 꾸물대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고무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필요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반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때로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이런 공상에 잠기지만 어려서는 더 많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해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날 소풍 날짜를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모레 광덕산으로 간다.”


모두 ‘와’하고 함성을 질렀습니다. 제일 먼저 머릿속에 삶은 달걀과 김밥이 떠올랐습니다. 보물 찾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풍을 가보지 못했지만, 동네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한 밤만 자면 소풍을 갑니다. 저녁을 먹고 밖을 내다봅니다. 잠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늘이 흐렸습니다.


‘비가 오면 연기한다고 했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뒤척이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비비고 하늘을 보았습니다. 한밤중입니다.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입니다. 늦지 않았는데도 지각한 것처럼 도시락을 받아 들고 학교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애인과의 약속만큼이나 설렙니다.


요즘의 기다림은 주로 내 글에 관한 것입니다. 신춘문예 문학상 응모에 글을 냈는데 그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한 달을 기다리기는 지루합니다. 발표 날을 달력에 표시해 놓고 매일 들여다봅니다. 제대를 앞둔 군인이 달력의 날짜를 지워가는 형식입니다. 초봄부터 그림책 만들기 공부를 했는데 이달 중순에 그림책을 완성하여 출판사에 맡겼습니다. 다음 달이면 선을 보이게 될 예정입니다. 내 글과 그림이 생각만큼 잘 인쇄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첫 직장의 출근 날짜를 기다리는 심정이기도 합니다. 새 학기가 되어 내가 맞을 첫아이들의 표정을 그려보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니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잠시 후에, 아침, 점심, 저녁. 한 달 후의 결혼식. 석 달 중순의 이사, 이년 후의 퇴직 등. 짧은 기다림도 있고 긴 시간의 기다림도 있습니다. 중요하다 여기는 기다림도 있고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기분 좋은 기다림을 앞두고는 마음이 설렙니다. 특히 내일일 경우 그렇습니다. 어떻게 기다리지. 오늘 밤은 왠지 만 시간만큼 길게만 느껴집니다. 긴 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밤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 밤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길고 지루한 밤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루한 기다림을 없애려면 빨리 잠들어야 합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거꾸로 세어볼까. 백, 아흔아홉, 아흔여덟……. 이를 어쩌지, 아무래도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습니다. 천정에 박힌 별이 초롱초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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