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길 20210801
새벽에 눈을 뜨자 귓전으로 물소리, 바람 소리가 다가옵니다. 이명이라서 그러려니 하다 창을 바라보았습니다. 열린 창문은 흐린 얼굴입니다.
‘뭐, 비라도 한줄기…….’
어제는 소나기라도 지나갔으면 했습니다. 더위가 쉼 없이 달라붙어 몸이 하루 종일 끈적거립니다. 어제뿐만 아닙니다. 지난달 중순부터 계속되는 열대야입니다.
하느님이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을까요. 소나기는 아니어도 보이지 않는 빗방울을 공중에 날리고 있습니다. 가는 분무기에서 내뿜는 물기 같습니다. 언제부터 내렸을까. 는개가 바닥을 적시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벽도 길바닥도 짙어졌습니다. 다시 하늘을 보며 활짝 열린 문을 반만 닫았습니다. 이때입니다.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전설의 고향’ 중 저승길이 떠올랐습니다. 왜 이런 생각이 났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바깥 하늘과 그 길의 풍경이 흡사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자야겠다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눈을 감았지만, 졸음이 달아났습니다. 새벽 공기에 몸은 식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덥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에 물을 한 컵 마셨습니다. 이제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가 내 귓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저승사자의 뒤를 따라가는 망자의 길에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묘한 기분이 듭니다. 형님 생각이 났습니다. 손위 동서 생각도 났습니다. 병환으로 쓰러진 후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게 되자 요양원을 택했습니다. 본인의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정황을 미루어 보아 집안 식구들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미안한 일이지만 자신들의 힘으로는 제대로 수발을 들 수 없으니, 남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모두 바쁩니다. 편하게 집안에 눌어붙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이면 밖으로 흩어졌다가 저녁이나 한밤중에 하나둘 모여듭니다. 환자를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그간의 정은 남아 있지만 행동은 다음입니다.
예전에는 밖에서 죽으면 안 되는 줄로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객사입니다. 옛사람들은 이런 일이 있으면 부정 탔다고 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집에서 운명하는 것을 꺼립니다. 농경사회에서나 가능했던 일입니다. 집은 좁은 공간이고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도 있으니, 문상객을 받기에 불편합니다.
이제는 거동이 불편하면 많은 사람이 요양원을 거쳐 죽음으로 다가갑니다. 급작스러운 죽음이 아니라면 점차 통과의례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인간의 수명 연장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삶의 기간이 늘어났으니 좋아할 일이지만 건강이 수명과 함께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는 길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요양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곳은 아닙니다. 대우의 문제입니다. 돈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호화 요양원이 있는가 하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협소하고 불편한 곳도 있습니다. 과장되게 말하면 대궐 같은 곳과 쓰러져 가는 초막의 환경입니다. 그러고 보면 죽음의 길에도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승으로 가기 전이지만 초췌해 보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족과 친지, 의사가, 간호사, 간병인이 한 번이라도 눈을 더 마주치고 손을 내밀어 줍니다. 죽기 전까지는 최소한 삶의 희망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합니다.
몸도 마음도 고달픈 시대에 살아서일까요. 요즈음 사람들은 죽어서도 괴롭습니다. 그중에도 추가된 죽음의 과정이 있습니다. 우선 목숨이 끊어지면 냉동실에 들려 몸을 꽁꽁 얼려야 합니다. 다음은 용광로만큼이나 뜨거운 불가마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대부분 죽은 자가 겪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정말로 혼이 나갈 일입니다. 앞서간 사람들보다 죄가 커서 그럴까요.
나는 무조건 건강해야 합니다. 죽음 목전까지는 발버둥을 치며 건강에 매달려야 합니다. 옛말에 의하면 개같이 살아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저승을 갔다 온 사람이 있습니까. 해가 지날수록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늘어납니다.
아직도 창밖은 뿌옇습니다. 멀리 보이던 산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안개 같은 습기를 머금은 물방울이 유리창에 매달렸습니다. 어느새 눈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죽음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길로 그 길로, 그 길의 끝을 볼 수는 없습니다. 용기를 내봅니다. 몸을 털고 일어났습니다. 머리를 감습니다.
굳이 구구 팔팔이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는 날까지 그 길을 잘 걸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