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공기놀이 20210815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한 곳에서 멈췄습니다. 눈에 익은 장면입니다. 화면 안의 사람들이 공기놀이하는 중입니다. 세 명의 젊은이가 공기를 앞에 두고 왁자지껄합니다. 그들이 손에 쥔 공깃돌이 조금 낯설어 보입니다. 나는 그 물체에 대해 알고 있지만 공깃돌로 사용해 본 적은 없습니다. 민물에서 살고 있는 조그만 다슬기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다슬기의 속살을 이쑤시개로 빼내어 먹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내가 옷핀을 사용했던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속살이 입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똥은 떼지 않는 거야.”
아내도 다슬기를 먹어본 경험이 있음이 증명된 셈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빈 껍질로 공기놀이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웃음을 자아내고 있지만 그들은 온 신경을 다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식욕에는 마음이 한 곳에 모아집니다.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먹는 즐거움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 세 사람은 내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돼지 삼겹살을 앞에 두고 내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점씩 한 점씩……. 마지막 남은 고기인 듯합니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아직 속이 덜 찬 모습이 보입니다. 재미로 하는 일이지만 시청자의 눈에는 경쟁으로 보입니다.
투박한 손은 작은 다슬기의 공깃돌을 잡아 올리기에 부담스럽습니다. 실패의 연속입니다. 끝에는 성공이 있는 법. 여러 차례의 실수 끝에 드디어 내기가 끝이 났습니다, 결국 한 사람이 마지막 고기를 차지했습니다. 가스 불에 익혀진 작은 고깃덩이가 상추에 앉힌 채, 마늘, 고추장, 밥 한술이 쌓여 입으로 직행했습니다. 어찌나 큰지 입안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입을 오므리기 버거워 보입니다. 입을 바라보는 다른 두 사람의 시선이 부러움에 가득 차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해도 공기놀이는 딱지치기, 구슬치기, 팽이치기,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자치기, 사방치기,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비사치기 놀이만큼이나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여자애들에게 그랬습니다. 나도 공기놀이했지만, 여자들의 상대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만큼 놀이에 열중하지 못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도 잘하는 축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하기는 해도 나만큼 공기놀이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진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 민속놀이에 대해 아이들의 관심을 이끌었습니다.
아이들은 내 민속놀이 시범에 늘 환호성을 지릅니다. 내가 인간문화재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손에 익숙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놀이가 나오면서부터 민속놀이가 점차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젊은 교사들이 늘었습니다. 그들도 민속놀이를 대할 기회가 적었음이 틀림없습니다. 내가 운동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는 날이면 그들도 감탄하며 한 수 지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만큼은 뿌듯함을 느낍니다. 아직은 교육 현장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되는 셈입니다.
공기놀이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다섯 알 공기가 있고 모둠 공기, 알까기도 있습니다. 공기를 집어 올리는 방법에는 꺾기, 손뼉 치기 등이 있고 규칙도 그들만의 방법에 의해 결정되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고스톱의 게임 규칙을 생각해 보면 다양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공기놀이는 장소나 재질과 관계없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놀입니다. 실내나 실외를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깃돌로는 돌멩이, 조금 전에 본 다슬기라든가, 단추, 각종 열매, 구슬 등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면 가능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공깃돌도 나왔습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제기가 있는 것처럼 플라스틱 공깃돌이 출현되었습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이다 보니 이 또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플라스틱 공깃돌은 모양이나 크기가 일정합니다. 틀에서 구워낸 붕어빵이나 국화빵처럼 일률적입니다. 소리가 나지 않는 공깃돌인가 싶었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찰 그랑 찰 그랑 하는 소리 나는 것을 들고 왔습니다.
아이가 공깃돌을 내밀었습니다.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에 몇 번 시도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마침내 손뼉을 쳤습니다.
“되네.”
아이들이 너도나도 눈을 감고 공깃돌을 주워 올리기에 애를 썼습니다. 눈을 뜨고도 들어 올리기 서툰 그들이 곧 잘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거야.”
‘얘들아, 연습이 필요하단다. 거저 되는 것은 없어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실의 소란을 잠재웠습니다.
나는 잠깐 텔레비전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공기놀이했습니다. 마음으로 같이 했지만 내가 공기놀이를 주도했다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로 훈수를 두었습니다.
슬그머니 창고의 보물 상자로 다가갑니다. 그 속 어디엔가 아이가 선생님은 ‘짱’이에요 하며 선물했던 플라스틱 공깃돌이 잠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