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더위는 잠시 20210814
자다가 깨어 활짝 열린 창문을 닫았습니다. 제아무리 힘 있는 여름이라도 때가 되면 맥을 출 수가 없나 봅니다. 말복 전까지만 해도 나를 향해 밤낮없이 대들더니만 밤에는 슬그머니 힘을 뺍니다. 아무래도 한낮을 대비한 듯합니다.
밤을 생각해서 오늘은 좀 날 거라고 하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는데 여름의 입김이 식지 않았습니다. 슬금슬금 나무 밑의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습니다. 잣나무들이 모여 있는 그늘을 찾아가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잣송이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동안 잎 사이에 어울려 있는 잣송이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솔잎과 함께 푸름을 자랑하던 잣송이가 가을의 발걸음에 모습을 드러낸 게 분명합니다. 색깔이 제 나무의 기둥 색깔보다 더 진해졌습니다. 어느새 산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는가 봅니다.
넓은 벤치를 혼자 차지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한낮이라 그런지 바람이 없습니다. 주의가 절간만큼이나 조용하니 멍 때리고 싶습니다. 잠시 후 머리가 까닥하는 느낌이 들었다. 멍 때린 것은 맞는가. ‘맴맴’ 갑자기 매미 소리가 귓전을 때립니다. 화들짝 놀라 앞을 보니 어느새 날아왔는지 한 발짝 앞 나무 둥치에 붙어 있습니다. 배를 부풀리며 한바탕 소리를 내지릅니다. 손을 뻗으면 잡을 듯합니다. 손을 내밀다가 거두어들였습니다. 지가 울면 얼마나 울겠나 싶었습니다. 매미가 더 크게 울어 내 귓속의 매미를 쫓아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내 귀속은 언제부터인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높은 음의 쇳소리가 가늘게 나더니만 이제는 그 정도가 점점 커지고 집니다. 매미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로운 마음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청력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이명이랍니다. 의사는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는 없다며 주의점만 말해주었습니다. 몸이 허약해지면 정도가 심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건강관리를 잘하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입니다. 매미를 못살게 군일이 생각났습니다. 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을 한다고 매미를 너무 괴롭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잠자리, 나비, 여치, 귀뚜라미, 사마귀, 풍뎅이, 하늘소 등 많은 것들이 있었음에도 매미에 집중했습니다. 우선 매미를 잡기가 쉬워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손으로도 잡고 거미줄채로도 잡았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사용하는 매미채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내가 사용한 매미채는 직접 내가 제작한 것이다. 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잘라 둥글게 휘어 긴 나무 끝에 엮었습니다. 집 주위의 거미줄을 둥근 가지에 옮겼습니다. 몇 개의 거미줄을 붙이면 완성입니다. 매미채가 닿을 수 있는 높이라면 백에 아흔아홉은 잡을 수 있습니다. 거미줄의 끈끈함이 매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지금 내 앞의 매미는 한동안 끈질기게 울었습니다.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어렸을 때 만났더라면 여지없이 내 손에 잡혔을 텐데, 앞일은 알 수 없으나 시기를 잘 타고 난 셈입니다. 땅속에서 몇 년 동안이나 휴식을 취해서일까 매섭게 울어댑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일까. 가슴의 움직임이 멈출 줄을 모릅니다. 왜 이렇게 심하게 우는 거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매미가 우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수컷이 짝짓기를 위해 암컷을 찾을 때 웁니다. 수컷은 다른 수컷보다 힘차게 울어야 암컷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기에 사력을 다합니다. 그러고 보니 새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서도 울기도 하고, 폭염에는 체온이 올라가서 운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든 곤충이든 더위로 힘든 건 똑같은가 봅니다. 내용을 알고 나니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그머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매미가 ‘찍’ 오줌을 뿌린 채 울음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가버렸다. 내 그림자가 매미의 몸을 덮쳤나 봅니다. 그림자를 혼내주고 싶지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림자는 내 마음을 모르나 봅니다. 안다면 삐쳤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언덕을 오르자 비탈길을 잘도 따라 오릅니다.
꼬마 해바라기들이 태양을 향해 얼굴을 들고 있습니다. 모두 눈 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라기인가 봅니다. 그러면 달맞이꽃은 달 바라기일까. 달맞이꽃은 달 밝은 밤이면 꽃의 자태가 유난히도 고와 보입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고추잠자리가 해바라기밭 위에서 비행을 멈추지 않습니다. 하늘을 무대 삼아 오르고 내리고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때로는 해바라기의 얼굴을 스치듯 지나치기도 합니다.
잠자리의 울음소리, 왜 잠자리의 울음은 없지. 부끄러움일까. 잠자리의 사랑은 이심전심일까. 부르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하나 봅니다.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몇 마리가 하늘을 나는 데 열중합니다. 별별 생각을 하는 사이 더위는 그렇게 한풀 꺾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