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감자 찌는 날 20210817
감자를 많이 사 왔나 봅니다. 보름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남았습니다. 감자의 눈에 싹이 보입니다. 베란다의 화분에 물을 주다가 발견했습니다. 상자의 가운데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가장자리에 숨어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알만큼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감자에 싹이 트네.”
아내에게 알렸습니다. 빨리 먹어야겠다고 말했으나 아무런 표정이 없습니다. 서예에 집중하고 있으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습니다. 감자를 씻었습니다. 감자의 싹이 보이는 눈을 칼로 깊게 오려냈습니다. 아내가 하는 대로 감자에 칼집을 넣었습니다. 주먹보다도 큰 감자니 빨리 익으라고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삶아야 합니다.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할까.”
손등을 가리켰습니다. 감자를 다시 반으로 잘라 압력솥에 넣고 가스 불을 켰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주방으로 나와 불 조절을 했습니다. 감자를 꺼내며 웬 물을 이렇게 많이 넣었느냐고 합니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같은 손등이라도 차이가 있으니 그럴 수 있겠습니다. 맛을 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입니다. 햇감자라 껍질을 벗겼을 때 포슬포슬한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질퍽합니다. 소금도 넣는 것도 깜빡했습니다. 싱크대 안을 뒤졌지만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감자를 찌는 방법을 잊었습니다. 감자를 먹으면서 지난 일을 되새겨 봅니다. 어릴 때의 일입니다. 무쇠솥에 감자를 쪘습니다. 지금 솥에 비하며 크기가 엄청나게 큽니다. 식구가 많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솥 바닥에 대접이나 사발을 엎어놓고 물을 부었습니다. 다음은 그릇 주위에 감자를 놓았습니다. 불 조절이 중요합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초과하면 음식이 타거나 바닥에 눌어붙습니다. 밥의 누룽지가 맛있는 것처럼 감자가 맛이 있으려면 겉이 약간 눌어붙는 정도가 좋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감자를 찐 것은 선생이 되고부터입니다. 실과의 교육과정에 음식 만들기가 있고 이중에 감자 찌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도 방법이 교과서 지침서에 있습니다. 뜸을 잘 들여야 합니다. 달걀을 삶는 것처럼 시간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이론만으로 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습할 때가 되었을 때 어머니와 이웃 반 여선생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선생은 이것저것 할 수 있는 만능의 소유자이어야 합니다. 지금의 실과 교육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초보적인 경험을 기르는 것이나. 의식주에 관한 것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왜 감자를 찌는 생각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볶고, 튀기고 굽기도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구운 감자를 좋아합니다. 포일에 싸서 구워볼 걸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화롯불이나 아궁이의 잿불에 구웠습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하지, 가스 불 위에 올려놓으면 될까? 언 듯 생각이 났습니다.
‘찐 감자를 프라이팬에 담아 다시 불 위에 올리는 거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까.’
다음번에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감자 찌는 방법을 다시 확인해야겠습니다. 한 가지 기억이 살아났습니다.
‘감자를 삶은 다음 물을 따라버리고 소금을 알맞게 넣고 뜸을 들이는 거야.’
나는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해 겁을 내지 않습니다. 잘해서가 아닙니다. 밥 할 줄 알고, 국수를 삶을 줄 알고, 몇 가지 반찬을 만들 줄 압니다. 예전에 자취를 해본 경험 때문입니다.
가끔 아내가 집을 비울 때가 있습니다. 내 끼니 걱정을 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기나 해요.”
몇 년 전에 보건소에서 노년 부부들을 위한 간편식 만들기를 했습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어 참가했습니다. 이날은 샐러드 만들기입니다. 강사는 건강식이라고 했습니다. 평소에 어렵게 생각했는데 하고 보니 별것 아닙니다. 과일과 채소,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상황에 맞게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후 집에서 실습을 해보았습니다. 보건소에서 이용했던 식재료만 고집했습니다. 그때도 감자가 있었는데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것도 샐러드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을 떠올렸으니 몇 개 남은 감자를 사용해야겠습니다. 튀기든 복 든, 찌든 내 생각대로 하면 됩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그때의 기분을 되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