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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07. 2024

-2021 그날

89. 노래를 불러보다 20210816

왜 이렇게 계이름이 외워지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외웠던 동요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을 외워야 악기를 연주하기 쉬운데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악기를 손에 만지니 운지법도 서툽니다. 일주일 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연습을 했지만 더듬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라도 완전하면 좋겠는데 생각 같지 않습니다.


악기 연습을 그만두고 악보를 들었습니다. 계이름으로 노래를 불러봅니다. 이럴 수가, 오카리나로 연주했던 곡임에도 불구하고 엉망진창입니다. 낮은음은 그런대로 흘러가는데 높은 도에서는 목소리가 찢어집니다. 레와 미에서는 아예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한동안 노래를 해봤어야지, 어찌 된 일인지 노래방 한 번 가보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입안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대신 음악 감상은 많이 했습니다. 심심하다 싶으면 음악 감상입니다. 제목은 모르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곧 동화가 됩니다. 많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며칠 전, 밤에 아내의 친구네가 집 마당에서 이웃 사람들과 회식 겸 노래를 한 모양입니다. 그중 한 친구가 마음에 드는 노래가 있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외국 노래입니다. 제목과 가사의 내용, 가수의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는 음악의 흐름은 알겠는데 제목을 모르겠다고 지원요청을 했습니다. 들어보니 제목이 가사의 내용에 들어있습니다. 가수의 이름만 찾아주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일이 있으면 나는 음치에 박치라며 한사코 사절합니다. 아니 완강한 거부를 하는 겁니다.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는 일입니다. 체면이 뭐라고,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못 하는 게 있게 마련입니다. 잘하든 못하든 얼렁뚱땅 지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합니다. 지나고 나면 후회됩니다. 이럴 때는 아내에게 꼭 한 소리 듣습니다. 노래를 못 부른다고 아예 입을 닫으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며 집에서 흥얼거리랍니다.

악기를 연습하다 그 생각이 나서 계명으로 불러보았지만, 높은음에서는 말이 아닙니다. 그냥 해보았다가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날게 분명합니다.


악보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섰습니다.


“나 운동하고 와요.”


만 보를 걸을 겸 바닷가에 있는 아트센터로 향했습니다. 주변 공간이 넓어 마음대로 활보하기가 좋습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드물어 마스크를 벗어도 눈총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만일 사람이 눈에 뜨이면 거리를 멀찌감치 두면 됩니다. 생각대로 바닷가 방파제에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악보를 꺼냈습니다. 허밍으로 계이름을 불러보며 손은 박자를 맞추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입니다. 허밍도 허벅지를 두드리는 박자도 어색합니다. 대여섯 번 해본 후에야 어느 정도 감을 잡았습니다. 계이름으로 리듬을 탑니다.

‘오, 되네.


호흡조절이 잘되지 않지만, 높은음도 목을 타고, 나옵니다.


‘뭐지, 내가 처음부터 음치, 박치라고 포기했던 거야?’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서 긴장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으니, 긴장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낼 수가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괜찮을 것도 같습니다. 운동을 하는 틈틈이 목청을 가다듬는다면 음치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깁니다. 나는 원래 목소리 대장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수업 시간에 독창시키면 유독 혼자만 목소리가 컸습니다. 크게만 하면 노래를 잘하는 줄로 알았습니다. 일 학년 때의 일입니다. 담임선생님이 출장으로 교실을 비우자, 예쁜이 여선생님이 수업을 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오락 시간이라며 한 사람씩 교단으로 올라와 노래시켰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칠판 앞으로 향하자, 친구들은 모두 책상에 엎드려 귀를 막았습니다. 선생님은 친구들의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목청 찢어질라.”


재빨리 노래를 중지시켰습니다.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어리둥절했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최대한 몸을 숙이고 책상 사이로 숨었습니다. 곧 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책상에 다가가 엎드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살그머니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은 바른 자세로 앉아있습니다.


나는 흥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늘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보릿자루 꿔다 놓은 사람처럼 자리를 지키다 끝을 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의 생활에 익숙합니다. 음악 중 유독 노래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미리 포기했던 때문이 아닌지 반문해 봅니다. 다시 도전을 해볼까요. 우선 쉬운 노래부터 마음에 두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목청을 가다듬어 보는 겁니다. 혼자도 잘 놀 줄 아니, 됐다 싶으면 혼자 노래방에도 가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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