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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08. 2024

-2021 그날

92. 가로등의 매력 20210820

가로등의 고마움을 느낀 것은 몇 년 전의 일입니다. 비가 내리는 늦은 밤 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쓰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입니다. 갑자기 어둠이 내 앞을 덮쳤습니다. 주변에 있는 건물과 가로등의 불빛이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벼락으로 변전소의 기능이 일시 정지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기 사정이 열악하던 시절에는 종종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빈번한 일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집안에는 정전을 대비해서 남폿불이나 초를 일정한 곳에 놓아두었습니다. 플래시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전기 수급이 안정화되면서 전기의 고마움을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전자제품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을 사용하면서 전기의 사용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가 공기의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번갯불이 번쩍하고 천둥소리가 귀를 때리자, 공포감이 밀려옵니다. 더구나 어둠까지 나를 끌어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까지 ‘휘릭’하고 나에게 달려들더니 우산을 뒤집어 놓고 말았습니다. 우산을 바람에 놓아주고 집으로 달렸습니다.


가로등이란 교통의 안전과 보안을 위하여 길을 따라서 설치한 조명등입니다. 가로등이 생기기 전, 옛날 사람들은 무엇으로 어둠을 밝혔을까요.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양초나 석유램프를 집마다 달아 도난과 방화를 예방했다고 합니다. 가로등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야만 할까요. 하지만 가로등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가로등 하면 고대 그리스·로마가 그 출발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과거에는 기름이나 가스를 사용하던 시절이고 보면 누군가 가로등을 켜고 꺼야만 했습니다. 가로등지기입니다. 일정 구역을 나누어 맡았다고 합니다.


유럽 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어느 광장의 가로등이 특이했습니다. 손에 들고 다니는 등불과 흡사합니다. 옛날 석유를 사용할 때의 가로등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가로등의 불을 밝히기 위한 원료는 전기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지역의 규모에 따라 가로등의 숫자는 다르지만, 지구상에는 약 삼억 개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1900년 4월 10일엔 종로 네거리에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을 밝히기 위해 3개의 가로등이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가로등은 백만 개를 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가로등지기가 필요할까요. 오늘날은 가로등을 원격 제어를 통해 저절로 켜졌다 꺼졌다 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가로등은 이제 우리와 함께 존재합니다. 밤뿐 아니라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낮에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가로등이 이제는 도시 미관과도 연결되어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가로등을 하나하나 다르게 만들 수는 없지만 이왕이면 그 고장의 분위기와 어울리도록 특징을 나타내는 것도 좋습니다.


가끔 운동 겸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은 국제회의가 수시로 열리는 큰 걸물 주변을 택했습니다. 그 건물과 야외 주차장 사이에는 큰 광장이 있습니다. 인도를 따라 가로등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는 그 가로등 밑의 인도를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로등의 생김새도 좋아 보이지만 시간 차이를 두고 불빛이 바뀌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색깔이 바뀌고 불빛이 밝아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합니다. 가로등과 함께하는 또 다른 조명은 바닥에 무늬를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글귀도 선사합니다. 내가 그 불빛으로 들어가면 마치 연극 무대에라도 선 느낌이 듭니다. 알록달록한 불빛에 옷을 갈아입는 듯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인도를 따라 주차장 주위를 돌기도 하고 광장에 줄지어 늘어선 색이 다른 바닥을 차례로 밟습니다. 어느새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가로등은 거리의 분위기와 건물의 아름다움도 선사합니다. 도시의 낮 시간과는 또 다른 이미지를 연출합니다.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가로등이 멋진 모습이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은 잠시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호숫가입니다. 또 다른 가로등에 비치는 풍경을 감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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