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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08. 2024

-2021 그날

93. 개인의 양심은. 20210819

선량한 사람도 예비군복을 입으면 말씨나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말씨나 행동이 유순한 사람이라도 군중 사이에 끼어들면 몇 배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다시 말하면 좋은 일에도 힘을 발휘하지만, 거침없이 나쁜 일에 휩싸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정치인과 그를 추종하고 응원하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씨름이나 행동들이 볼만합니다. 볼만한 게 아니라 볼썽사납습니다.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입니다. 한 마디로 개싸움 같다는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비단 정치인 뿐만은 아니라 이익집단도 그러합니다. 서로 돕던 집단 간에도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입씨름은 물론이고 집단적 행동과 폭력도 불사합니다. 이들을 볼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들 속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개인적으로 유순하고 예의 바른 사람입니다. 집단에서 개인적 양심이란 원래 없는 것일까. 나는 일반적으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사가 있어서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다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대인 학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나치가 자행한 일입니다. 홀로코스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치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학살이 관료제가 특징인 과도한 분업체제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양심은 왜 발휘되지 않았을까. 조직적인 분업이 각자의 올바른 판단을 인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의 명부 작성, 검거, 이송, 구금,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있어 많은 사람이 분담했기 때문에 책임의 한계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시키는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명부를 작성하는 일만 했을 뿐입니다. 나는 검거하는 역할만 했습니다. 나는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책임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로의 예도 있습니다. 육이오 전쟁 중에도 그렇고 끝나고서도 그랬습니다. 좌우의 반목은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습니다.


즉 현대와 같이 조직화하고 분업이 표준화된 사회에서는 나쁜 일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악행에 참여하기가 쉽습니다. 지도자나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향해 문자폭탄을 날리고 전화를 불통시키는 일이 있습니다. 정치뿐이겠습니까. 며칠 전에는 술에 취한 동료들이 행인을 집단적인 폭행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학교 폭력도 그렇습니다. 집단으로 한 학생을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좋지 않은 사건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 일에 가담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지시 사항을 성실히 따랐거나 군중심리가 작동했습니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내 생각이 없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떠한 집단 체계 속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 자신이 하는 일들이 사회에 끼치는 그 영향을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하나 개인적으로 살펴보면 선량한 성격의 사람이 많습니다. 그가 그런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닌데…….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와 같다.'


생각을 잘해야 합니다. 집단의 힘에 휩쓸리기보다는 개인의 양심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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