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하늘 보는 재미 20210820
말복이 지나자, 새벽녘에 서늘한 기운이 창문 안을 엿봅니다. 며칠 지나자, 더위가 꺾였음을 실감했습니다. 더위에 지친 대지가 생기를 얻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늘이 점점 맑은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파랗다 못해 시린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배를 내놓고 잠을 청하던 내가 이제는 얇은 이불을 덮어야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요즈음 하늘을 보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일어나면 우선 하늘로 눈이 갑니다.
“여보, 이리 와서 하늘을 좀 봐. 너무 멋지지 않아.”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아내를 잠시 불러 세웠다.
“그러게, 아침일랑은 그만두고 저 구름을 한 귀퉁이를 떼어먹었으면 좋겠구먼.”
그렇습니다. 저 부드러운 솜사탕 구름을 입 안에 넣으면 씹을 사이도 없이 사르르 녹을 것만 같습니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사 온 양배추와 모둠 싹을 접시에 담았습니다. 구름을 한 귀퉁이 뜯어 함께 버무렸습니다. 옥수수 반 토막, 풋사과 반 개, 달걀 한 개를 덧붙였습니다. 탁자를 창가로 가져갔습니다.
아침부터 나들이를 한 기분입니다. 새하얀 구름이 점점 피어오릅니다. 눈 따로 손 따로 입 따로. 나는 손오공입니다. 저 구름, 저 구름을 담아야 하는데, 카메라를 창밖으로 내밀었지만 구름은 안으로 들어올 마음이 없는가 봅니다. 옆 건물들에 몸을 숨기고 몸통만 내보입니다. 온전한 모습을 원하는데 움직임이 없습니다. 옆 건물을 옮겨보고 싶은 생각에 마음으로 힘을 써보지만, 꿈쩍하지 않습니다. 구름을 손바닥으로 밀어 올려봅니다. 아파트 옥상까지 만이라도 올라갔으면 좋겠습니다. 손에 힘을 주고 눈에 힘을 주어 보지만, 요지부동입니다. 저 가벼운 것이, 저 가벼운 것이 내 속을 태우다니. 구름은 손오공의 마음만 알고 있나 봅니다. 오공이의 팔뚝을 봅니다. 여의봉은 들고 있지만 완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완장의 위력도 대단하던데…….
중얼거리며 구름과 씨름을 하는 사이에도 아내는 무심합니다. 휴대전화에 눈이 가있습니다. 슬그머니 엿보았습니다. 음악을 찾는 중입니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을 탐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아침에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
모차르트의 곡이 선정되었습니다. 따스한 커피를 앞에 두고 모차르트를 구름에 태웠습니다. 손오공의 손놀림이 한없이 부드럽습니다. 지휘하던 여의봉이 사라지자, 커피잔도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아직도 구름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손부채질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여름 내내 부채질 한 번 하지 않던 내가 구름을 어떻게 해보겠다고 할 일이겠습니까. 그만 봐요 하는 말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나는 요즘 오후가 되면 습관적으로 공원에서 제일 높은 언덕을 오릅니다. 시원하게 뚫린 시야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 멀리 북악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능선을 따라 이름 모를 산들이 굴곡을 이룹니다. 인천대교 출입구에는 딱정벌레만 한 차들이 쉼 없이 드나듭니다. 안경을 뒤집어쓴 터널은 주위를 경계하듯 한 방향만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가 하늘 아래 있습니다.
머리를 들었습니다.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태양을 등졌습니다. 구름은 동서남북과 관계없이 제멋대로 흩어져 놀고 있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야 없지.’
스마트폰을 들었습니다. 언덕 위의 좁은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발걸음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찰칵찰칵 연이어 단추를 눌렀습니다. 화면의 구성일랑은 뒤로 미루었습니다. 태양이 화면에 부딪혀도 눌러봅니다. 맘에 들지 않으면 버리지, 뭐 하는 생각입니다. 필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은 세상입니다. 필름을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망설이고 재기를 반복한 후에 셔터를 누르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렇게 마음 놓고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벤치에 앉았습니다. 어느새 삼십여 장을 담았습니다. 버릴 일만 남았습니다. 하나하나에 눈을 맞추어 봅니다. 모두가 아름답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지우기로 작정했는데 갈등이 생깁니다. 태양을 마주 보고 찍은 화면까지 멋진 모습을 보이니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무래도 집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내 컴퓨터에는 엄선된 것들이 백여 장이나 들어있습니다. 장마가 끝나고 담은 화면입니다. 이러다가는 가을이 끝날 때쯤이면 컴퓨터의 용량이 넘쳐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 가서 생각할 일입니다. 두 손을 모아봅니다. 이 가을에는 하늘을 사랑하게 하소서.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가을에 물들어 아름답기를……. 높게 솟아오르는 호수의 분수가 하늘을 파랗게 적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