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머리 아파요. 20210820
한동안 층간 소음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아래층 어린이가 원인입니다. 조용하던 침묵이 깨진 것은 작년 초부터입니다. 처음에는 위층에서 나는 소리라고 여겨 오해했습니다. 관리사무실에 너무 시끄럽다고 했더니 상황을 파악한 모양입니다.
“위층은 노인 두 분만 사신답니다.”
계속 뛰는 소리가 들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몇 번 틈을 내어 올라가 상황을 파악했는데 정말 조용했습니다. 우리 옆집도 살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현관 입구에는 어린이 자전거가 놓여있고 씽씽이가 두 대나 어지러이 널려있습니다. 남매인 게 틀림없습니다. 씽씽이의 색깔이 하나는 파란색 또 다른 하나는 분홍색입니다. 잠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추측이 맞았습니다. 현관문이 닫혀 있음에도 아이들과 엄마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뛰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습니다. 목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그들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아래층에서 일으키는 소음이 틀림없습니다.
관리실에서 주의를 당부했나 봅니다. 그 후로는 뛰는 횟수가 줄어드는가 싶었는데 이틀이 지나자, 매일반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구분 없이 뜁니다. 어느 때는 밤 두 시까지도 달음박질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관리실을 찾아가 말하자, 담당자는 대면시키고 중재를 부탁할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언짢은 일로 얼굴까지야 마주할 일이 있겠나 하는 생각에 한 번 더 조심하라는 말을 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 후로도 뛰는 일이 반복되었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 처지에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어떤 여인이 우리 집의 현관 벨을 눌렀습니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현관문을 보니 메모지가 붙어있습니다. 위층에서 집수리하니 시끄러워도 좀 양해해 달라는 쪽지입니다. 누수로 인해 바닥과 천장의 보수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 무심코 지나갔는데 그날이 오늘인 모양입니다. 오전부터 쉴 새 없이 드르륵드르륵 기계의 마찰음이 대단합니다. 바닥을 공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아내와 나는 점심을 먹은 후 소음을 피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면 시끄러움이 잦아들 거라고 하는 마음입니다.
가을로 접어드니 날씨가 산뜻합니다. 구름이 하늘을 수놓고 바람도 가을 맛입니다. 나무 그늘이 있는 바위에 앉았습니다. 밖으로 나왔지만 답답합니다. 할 일 없이 앉아있으니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책 한 권이라도 손에 쥐고 나왔으면, 라디오를 들으면 덜 심심할 텐데.
아내는 아내대로 심심하다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앞에 보이는 클로버를 향해 다가갔습니다. 네 잎 클로버라도 찾아봐야 합니다. 천천히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지만, 그 잘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숨어버렸나 아니면 네 잎 클로버란 무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지, 오늘은 한 잎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호수의 다리를 건넜습니다. 잣나무가 벤치의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입니다. 기대하고 갔는데 아닙니다. 때를 잘못 맞췄습니다. 석양은 잣나무 깊숙이 스며들어 벤치를 달구고 있습니다. 그늘이 드리운 두 개의 벤치는 젊은 남녀들이 각각 차지했습니다. 다시 언덕으로 올라갈까 망설이는 찰나 한 쌍이 자리를 떴습니다.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때입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매미가 요란스러운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연이어서 또 한 마리가 뒤를 따랐습니다. 화음이 맞는 듯했는데 불협화음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호수에 떠다니는 놀이 배를 바라보며 그들을 평가했습니다. 느리다느니 빠르다느니, 한 쌍의 모습이 어울린다느니, 저쪽 사람은 외롭게 혼자 타고 있느니. 시간이 잘 가게 하는 것은 남을 평가하는 일도 한몫을 하나 봅니다. 외로워 보이는 사람의 배가 사라졌습니다.
“그만 가지.”
집으로 돌아오니 위층의 작업이 끝났나 봅니다. 조용합니다.
아래층의 뛰는 소리는 여전했지만, 횟수도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주변에서 시끄러움을 호소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달에는 며칠 동안 조용했습니다. 이사 간 것이 아닌가 하는 반가운 마음에 슬며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자전거는 보이지 않는데 씽씽이는 그대로입니다. 아이의 신발이 밖에까지 나와 나뒹굽니다. 기대했던 일이 아니니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 후로도 가끔 뛰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정도가 미약합니다. 이 정도라면 참을 만합니다. 혹시 방음 시설이라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철이 들었을까? 아이도 부모도 조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이 공동주택에서 생활하다 보니 층간 소음으로 인해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다툼 끝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서로 이해하고 조심하는 미덕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