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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08. 2024

-2021 그날

96. 위험한 길 20210821

 전에는 밤길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두려움을 느낍니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살았으니 위험하다기보다는 밤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야가 좁아지고 움직임이 느려지니 탓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과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니 몸이 찌뿌듯합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다가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틀간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낮에 한바탕 쏟아졌습니다. 하늘을 보니 비가 올 듯 말 듯 애매한 모습입니다. 우산을 들었습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 옆 건물로 통하는 좁은 인도를 따라가는데 오토바이가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습니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입니다.


‘오토바이 출입 금지.’


인도의 앞뒤에 팻말 두 개가 막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처럼 뚱뚱한 플라스틱 물체입니다. 주차금지를 알리는 빨간 물체와 모양이 같습니다.


“출입 금지 팻말은 왜 치웁니까.”


배달원은 말이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길을 비켜주었습니다. 그가 왜 팻말을 치웠는지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은 아파트의 어디를 가나 배달 오토바이와 주민들 간의 신경전이 치열합니다. 배달 오토바이 운전자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차도를 가까이 두고도 더 가까운 인도를 비집고 다닙니다. 한 번이라도 더 배달하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고 싶은 생각입니다. 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모를 리는 없지만 주민들로서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안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주민들의 소통 공간이 있습니다. 모빌을 개설하여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개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뜻을 한 곳으로 모으기 위해 힘씁니다. 작년부터 오토바이의 불법 통행에 대한 논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습니다.


도둑 하나 지키는데 열 명으로도 부족하다는 옛말처럼 아직도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주민 중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걱정이 제일 많습니다. 이해됩니다. 구조물이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는 의견, 보는 대로 사진을 찍어 고발하자는 둥 분분하지만 아직도 논의 단계입니다. 타 아파트의 대책을 가져와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의 사고는 예전부터 많았습니다. 자동차가 늘어나면서부터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것과 같이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즈음은 킥보드까지 가세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면 보행자는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에의 법이나 제도로만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법규를 지킬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억제보다는 스스로 실천이 중요합니다. 길을 걸을 때나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토바이의 불법 주행을 자주 보게 됩니다. 완전 곡예 운전입니다. 차도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수시로 넘나들며 신호를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역주행을 서슴지 않습니다. 모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의 오토바이 운전자가 그렇습니다. 차와 사람을 상대로 달리는 무기가 된 셈입니다.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갈 때는 섬뜩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 위험이란 밤낮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밤보다 낮에 사고를 목격한 일이 더 많습니다. 밤에는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낮에보다는 나들이가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밤새 안녕하셨나.’


라는 말처럼 뉴스를 보면 밤에도 사고가 일어납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피해도 있습니다. 어둠이 나를 가려주겠다고 하는 마음인지 모릅니다. 사고란 주의를 소홀히 하는데서 일어납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일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습니다. 며칠 전 통계를 보니 사고율이 조금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오명을 벗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내가 학창 시절이나 젊었을 때는 리본을 가슴에 다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습니다. 홍보 겸 캠페인의 성격입니다.


국가의 시책입니다.


‘교통안전 주간, 산불 조심 주간, 근검절약, 산림녹화’


등의 이런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요즘에도 리본은 있습니다. 산행하다 보면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응응 산악회’ 단체를 알리기 위해 배낭에 달기도 하고, 길 안내를 하기 위해 산길 곳곳의 나무에 매달아 놓은 예도 있습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교통 문제뿐이겠습니까. 사회 곳곳에는 다양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법규를 지키고 서로 조심할 때 사고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양심 지키기 주간’을 설정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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