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불편한 마음 20210825
태풍이 온다는 말을 들었는데 낮부터 날이 꾸물거립니다. 먹구름이 끼는 듯했는데 바람이 소리를 내며 모기장을 훑으며 지나갑니다. 밤에는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우리 고장은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어도 설움에 통곡하는 이의 얼굴처럼 빗방울이 유리창을 적셨습니다. 잠을 어떻게 잤는지 모릅니다. 눈을 감았어도 자다 깨기를 반복했습니다. 몸을 뒤척였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 온몸이 쑤시고 저려옵니다. 더운 생각에 침대에서 벗어나 날바닥에 누워 밤을 보낸 결과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였지만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밤은 악몽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잠시 상태가 좋아지기를 기대했지만 허사입니다. 안 되겠다 싶어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움직여야 할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오전 내내 걸을 작정입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한 대로 길을 잡았습니다. 공원을 지나고 하천가를 따라 걷다가 가까운 캠퍼스를 둘러보고 다시 골프장 쪽으로 해서 집으로 돌아오기로 계획했습니다.
하천가로 들어섰을 때입니다. 저 앞 풀 섶에 웬 똥 덩이가 놓여있습니다. 내 팔목만큼이나 굵습니다. 눈이 저절로 찌푸려집니다. 사람 똥은 아닐 테고 큰 개똥이 아닐까. 못 본 척하려다 옆을 지나칠 때는 결국 보고 말았습니다. 아니 나무토막입니다. 누르틱틱한 게 멀리서 보면 착각하기에 알맞습니다. 발로 툭 차서 나무 밑으로 날려버렸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뱀을 보고 놀란 사람이 칡뿌리를 보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고향마을 아저씨의 말입니다.
앞쪽에 벤치가 보였습니다. 좀 쉬어가야겠다는 마음에 걸음을 빨리했습니다. 의자의 앞쪽에는 모감주나무가 몇 그루 서 있습니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듯 연두색의 열매가 어느새 갈색을 띠고 있습니다. 꽈리 모양의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줄기에 열매가 줄지어 많이 달리기는 하지만 유독 이 나무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도록 가지를 힘들게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야겠습니다. 햇빛의 방향을 가늠하여 두 장째 찍을 무렵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무슨 나무인데 이렇게 열매가 많이 달렸대요.”
그녀도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모감주나무입니다. 열매가 탐스러워서 한 장 찍는 중입니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모른 체 나는 자리를 피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감주나무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하천가에는 모감주나무가 많습니다. 대부분 가을을 알아차리고 있지만 두 나무는 아직도 여름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노란 꽃은 하늘을 향하고 열매는 줄기를 짓누른 채 연한 연둣빛을 띠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모습입니다. 방향을 바꾸어 다른 길로 올 때입니다. 다른 나무를 몇 번이나 모감주나무로 착각했습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만 오늘은 왜 이렇게 여러 차례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참 이상합니다. 여기저기 개똥투성이입니다. 가까이 가보면 개똥이 아니라 나뭇잎이나 흙덩입니다. 요 며칠 비가 내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전에 똥을 밟은 일이 있어서인가 잘 모르겠지만 착각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똥이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똥이야 몇 번 밟았습니다. 오래전 일입니다. 일부러는 아니고 발을 딛다 보니 모르고 밟게 되었습니다. 신발에 묻은 똥을 닦느라고 풀밭에서 발을 앞뒤로 옆으로 얼마나 움직였는지 모릅니다. 풀 수세미를 만들어 냇물에 적셔가며 닦았습니다. 냄새를 마음에서 없애기까지는 수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 나뭇가지를 똥으로 오인한 것도 이런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자주 보아야 하는 것이니 따지고 보면 벌 것도 아닌데 남의 똥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밖에서 사람 똥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신 개똥이 우리들의 주변을 차지했습니다.
공원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안내방송을 합니다. 개의 목줄을 매라거나 개똥을 남기지 말라고 주의를 당부합니다. 치우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게 주인 때문입니다. 아파트 단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도 하고 모빌에서도 이 내용을 가지고 왈가불가 말이 많습니다. 가끔 비난과 함께 배설물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날은 개 주인을 성토하는 장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개 오줌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파트 출입구와 광장의 돌의자는 '개 오줌' 문구가 있습니다. 얼룩도 보기 싫지만, 냄새도 싫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일찍 잠에서 깨어 아파트 주변을 돌아보면 이미 이곳저곳이 젖어있습니다. 앉을자리가 땅이 아닙니다.
“개 오줌과 개똥은 사람처럼 집안에서.”
일부 반려견 주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소에 경 읽기가 아니라 개에 경 읽기입니다. 살펴보니 항상 그 개에 그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슬이 내린 거야, 비가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