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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Dec 09. 2024

-2021 그날

100. 학교는 쓸쓸하다. 20210827

학교는 쓸쓸합니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그렇습니다. 요즘 학교 근처를 지날 때면 유독 눈이 자주 갑니다. 초중고의 운동장에는 하루 종일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뛰노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아이도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교직에서 퇴임한 후에는 학교의 실정을 알지 못합니다. 가족 중에 학생이 없으니 감감무소식입니다. 며칠 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옆을 지나다 언덕의 울타리에 붙어 서서 운동장과 교사의 건물을 관찰했습니다. 늘 보아도 절간같이 고요한 모습이 낯설어 혹시나 아이들이 보일까 하는 마음입니다. 한 시간 이상을 기웃거렸지만, 그림자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날짜를 보아 개학을 했을 만한데, 혹시 방학 기간이 변경되어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궁금해서 주위에 있는 학교를 더 돌아보았지만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같으면 쉬는 시간에 창문으로 얼굴을 내미는 아이들이 있고 점심시간이면 놀이를 하느라 운동장을 휘젓는 모습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체육 시간에는 아이들이 운동장을 채웁니다. 공이 날아다니고 뜀박질하는 모습이 야생마 같았습니다.


코로나19가 빚어낸 세상은 요지경입니다. 뉴스를 보니 아이들이 공부하는 책상에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뿐인가 공공의 실내에도 이런 모습들이 여러 군데 눈에 띕니다. 내가 그동안 배움을 위해 다녔던 강의실 책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산책 겸 운동을 할 마음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학 근처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잠시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얼굴이 답답해집니다. 마스크 안으로 습기가 차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봅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 싶었을 때 슬그머니 한쪽 귀에 걸었던 끈을 아래로 내립니다. 걷다는 중 반대편에서 사람이 보일라치면 재빨리 끈을 귀에 걸치고 마스크를 다독입니다.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눈에 뜨입니다.


대학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울타리를 끼고 바닷가로 가려다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대학교에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전에는 가끔 몇 명씩 보였는데 오늘은 건물과 나무들만 학교를 지키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채 교정으로 들어섰습니다. 넓은 잔디밭을 지나 건물과 건물 사이의 길로 접어들자, 오고 가는 학생들이 몇 명 눈에 띕니다. 거리가 좁혀졌지만, 마스크를 쓰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이쪽 길과 저쪽 길 사이가 넓어 서로 교차하여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들도 마스크에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전 같으면 방학이라고 해도 길에는 학생들이 분주히 오가고 잔디밭이나 건물 안에도 많은 인원이 있었습니다. 야외 카페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고 구내식당은 하루 종일 붐빕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둘러보았지만 문이 잠긴 채 한적합니다. 


오늘은 교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기계 소리만 요란합니다. 나무를 정리하는 손길. 길게 자란 풀을 깎는 손길로 학교는 작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교의 중앙 통로를 천천히 걸어서 학교 뒤편의 수목원으로 들어섰습니다. 매미 소리가 정적을 깨뜨립니다. 열심히 울어라. 너희라도, 그래야만 학교의 분위기가 조금은 살지 않을까. 나도 이에 가담하기로 했습니다. 배낭에서 리코더와 칼림바를 꺼냈습니다. 악보를 펼쳤습니다.


요즘 칼림바를 배우는 중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악기를 다루는 기초적인 방법을 습득했습니다. 리코더는 손에 익은 지 오래되어, 연주에 별문제가 없지만 늦게 손댄 칼림바는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건반의 위치가 피아노와 다르니 자꾸만 헛손질하기 일쑤입니다. 쉽게 생각되는 곡을 일주일이나 연습했는데도 온전히 음을 잡지 못했습니다. 꼭 한두 군데 이상은 틀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은 곡을 완전히 연주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소나무 그늘에서 얼마나 연습했을까. 시간을 보니 세 시가 지났습니다. 어느덧 서너 시간은 연습했나 봅니다. 이제는 이만하면 곡을 완주할 것 같은데 소리가 마음에 걸립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서 그런지 낮은음에서는 탁한 소리가 납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앞에 보이는 야외 광장으로 갔습니다. 반원보다 긴 의자는 무심합니다. 사람을 부를 생각이 전혀 없는 눈치입니다. 내가 다가갔지만 반가워 보이지 않습니다.


‘괜찮아. 아무렴 어때.’


무대에 앉아 무관 중을 상대로 칼림바를 연주했습니다. 응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몇 번이나 실수했습니다. 그래도 절반의 성공입니다. 두 번은 틀리지 않고 완주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리코더 연주도 선을 보였습니다. 나에게 관심을 둔 것은 매미입니다. 곁에서 울어대던 매미가 내 연주에 소리를 멈췄습니다. 분명 귀를 기울였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이제는 그만 자리를 떠나야겠습니다. 내 연주를 위해 참아준 매미에게 양보하는 의미입니다. 학교는 너무 조용합니다. 너희들이라도 울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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