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그날
98. 어른이 된다는 것 20210822
나는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기 전에 늙어버렸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현실보다는 공상 속에서 살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 꿈이 언제까지나 어린이의 마음에 머물러 있어야 했나 하는 반성을 합니다. 구름을 타고 날고 고래나 상어의 지느러미를 잡고 물속을 여행했습니다. 현실에 살면서도 마음만은 늘 현실에 안주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삶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동을 한 것도 아닙니다.
장점이 있다면 내 꿈에서 그려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이들의 시선을 모으는 데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몇 시간이고 좋으니 선생님 이야기만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환경이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어른이 되기 전에 철이 든 예도 있습니다. 그들은 내 안의 나를 찾아 길을 떠나고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여유도 있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시선을 돌릴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나는 늘 혼자입니다. 마음만은 늘 남과 함께 어울리는 세상이었지만 생각과 행동은 따로 놀았습니다. 초가집을 지을 수 없으면서도 항상 기와집을 짓고 허무는 꿈을 꾸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누군가 몇몇 사람은 나를 기인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남에게 큰 피해를 준 일도 없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는지 모릅니다. 내 작은 행동들이 마음에 거슬렸나 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꿈꾸는 자에게 꿈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꿈도 꿈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되지도 않을 일에 몰입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서도 부자가 되어보겠다는 욕심,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할 곳에 기웃거림, 너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로의 접근. 반대로 가까이해야 할 사람들에게서의 이탈 등입니다. 평범하고 순탄한 삶이었지만 때로는 하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함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렇다고 홀로코스트의 사건에 대비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삶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나도 그런 인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괴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시시한 작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시시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상대방으로서는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젠가 대학교에서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인문학 강의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배움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선착순으로 등록하여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강의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나만큼이나 머리가 하얗고 꾸밈이 없는 모습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일까. 기억을 더듬었지만,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혹시 전에 혹시 응응 학교에 근무하지 않으셨어요?”
“예, 맞습니다만.”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은수 어머니라고 신분을 밝혔습니다. 갑작스러운 만남이라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기억이 날 리가 없습니다. 벌써 삼십여 년 전이 아닌가.
“딸아이 때문에 선생님을 만나 뵈었을 때 이상한 말씀을 하셔서 얼굴이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극히 짧은 대답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기에 그의 머릿속에서 나를 지울 수 없다는 말일까. 좋은 말이라면 밝은 표정일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상처 주는 말을 했거나 혹시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딸은 열심히 공부해서 이제 막 중학교 선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축하합니다.”
한 마디가 전부입니다. 강의를 듣는 마지막 날이어서 그 후로 얼굴을 볼 기회는 없게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후회가 됩니다. 쉬는 시간에 더 이야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아니면 강의가 끝나고 가까운 휴게실에서라도 이야기를 나눠야 했습니다. 밝은 얼굴이 아닌 상태에서 나에게 건넨 인사말에 무언가 언짢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라고는 하지만 남모르는 어려움이 서려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조건이 아닌 열악한 환경에서 교육은 세심한 마음가짐이 필요했습니다. 콩나물 교실입니다. 급격한 신도시의 조성은 밀려드는 아이들을 교육 환경에 맞게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전반, 오후반, 그것도 모자라 삼 부제까지 시간을 나누어 써야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한 반에 육칠십 명이 태반이고 많을 때는 팔십여 명도 수용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책상과 책상 사이를 지나는 것이 아니라 책상 위로 통행해야 할 지경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교육이라기보다는 목장의 양몰이나 소몰이에 견주어야 할까. 시간이 되면 재촉하여 교실에 들여보내고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책가방을 챙길 사이도 없이 다음 학급의 아이들을 위해 밖으로 몰아내야 했습니다. 늘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이럴수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제 와서의 생각입니다. 그녀의 표정을 보아 내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미루어 짐작됩니다. 좋은 말보다는 분명 귀에 거슬리거나 상처 주는 말이었음이 분명합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습니다.
분명 어디엔가 다른 장소에 가서 자초지종을 알아봐야 했습니다. 나는 늘 이런 식입니다. 불리하다 싶으면 입을 다무는 습성이 있습니다. 해결책을 모색하지 못합니다. 우선 그 장소나 사건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나의 삶의 모습이 이뿐이겠습니까. 지나간 일을 더듬어 보니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몇몇 일들은 지우고 싶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게 합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후회와 반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남은 기간은 주위를 돌아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맺힌 것이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어른이 되기 위해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나는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기 전에 늙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