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등잔불의 추억 20210906
실내의 어둠을 밝히는 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집에 들어서서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반짝하고 집안이 환해졌습니다. 이와 함께 의문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등잔불입니다. 내가 심부름을 곧 잘할 나이가 되었을 때입니다. 할머니가 병을 하나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학교 앞 가게에 가서 석유 사 오너라. 할머니가 보냈다고 말하고.”
지금 생각하니 외상입니다. 꼬마에게 돈을 쥐어 보내기가 언짢으셨던 모양입니다. 꺼냈던 돈을 다시 감춥니다. 전날 밤 가물가물 줄어들던 불빛이 오늘은 생기를 얻었습니다. 영양공급을 충분히 받은 결과입니다.
나는 숙제를 하는 밤이면 가끔 앞 머리칼을 태웠습니다. 희미한 글씨를 보려고 등잔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순간 호록하는 소리와 함께 털을 그을리는 냄새가 납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이마의 머리칼로 다가갑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거울을 봅니다. 내일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놀릴까 염려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 중에도 가끔 나와 같은 머리칼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방이 어두운 것 같아 등잔의 심지를 조금 올렸습니다. 방 안이 환해졌습니다. 글씨가 잘 보입니다. 잠시 할머니의 말씀이 다가왔습니다.
“석유 닳을라. 심지 낮추거라.”
우리 집은 나은 편입니다. 아래 집 친구네는 등잔불을 켜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꼭 볼일이 있을 때만 잠깐 불을 밝힙니다. 친구가 공부한다거나 숙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소용없습니다. 낮에는 뭐 하고 밤에 해야 하느냐는 아버지의 핀잔입니다.
우리 집 방이 유난히 밝을 때가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입니다. 특히 제삿날입니다. 제례 상을 밝히는 촛불 두 개는 대낮보다도 방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습니다. 귀한 손님이 왔을 때도 사용합니다.
나는 등잔불의 원료는 석유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은 큰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입니다. 밤에 방안을 밝혔는데 우리 집 등잔과 다릅니다. 종지에 심지가 놓여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석유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먹는 기름이라고 합니다. 기름에 불이 붙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석유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멀어서 사러 다니기가 불편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촌 중에도 촌입니다. 자동차는 고사하고 수레도 다니기 불편했습니다. 지금도 주변은 고스란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깃불이 밝혀진 것은 1887년 3월 6일 저녁입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건청궁에 작은 불빛 하나가 깜빡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위를 밝혔습니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감탄사를 터뜨렸습니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70년대입니다. 그러고 보니 시골은 시골입니다. 경복궁에서 전기를 사용한 지 90여 년이 되어서야 문명의 혜택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중학년쯤입니다. 우리 마을을 지나 산등성이에 광산이 생겼습니다. 활석 광입니다. 굴을 파고 들어가며 하는 일이니 속은 밤이나 낮이나 어둠입니다. 광부들은 카바이드가 원료인 등불을 사용했습니다. 등불 몇 개로 광산의 어둠을 쫓아냅니다. 촛불은 카바이드 등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밝습니다. 우리는 신기한 생각에 버려진 재 안에 남아있는 작은 덩이를 모아 장난을 했습니다. 흙에 묻고 물을 부은 다음 불을 붙입니다. 주변이 잠시 밝아졌다 사그라집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의 역사는 불의 발견과 함께 선사시대부터 이어왔습니다. 내 유년 시절처럼 등잔은 없었지만, 모닥불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밤에 야외 행사를 할 때면 모닥불을 피우는 때가 있습니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옛사람들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소원을 빌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구가 진화를 거듭하여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사용처도 늘었습니다. 불빛이 거듭하여 더 밝아지고 전력의 소모도 줄이고 있습니다. 불빛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우리 집에는 아직도 내가 감춰둔 옛 등잔이 있습니다. 어릴 때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석유를 구해 불을 밝혔습니다. 거실의 전등을 끄자, 실내는 어둠침침합니다. 머리를 그을렸던 어릴 때의 밝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릅니다.
“아휴, 이게 무슨 냄새야.”
옆방에 있던 아들이 나왔습니다. 등잔불을 바라보더니만 창문을 열어젖힙니다. 바람이 휘리릭 커튼을 날립니다. 등잔불이 잠깐 춤을 춥니다. 어둠이 방안을 덮쳤습니다. 남폿불도 밝혀볼까 했는데 그만두어야겠습니다. 전등의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슬그머니 등잔과 남포를 들었습니다. 내 보물 창고에 숨겨야겠습니다.
괜한 짓을 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