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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3. 그날 20210916

by 지금은

싱싱했던 그날은 언제였던가? 그리 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마음과는 달리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전동차에서 먼저 내렸는데 젊은이들이 어느새 내 옆을 지나쳐 갑니다. 계단을 오릅니다. 역시 그들은 나를 뒤로하고 성큼성큼 앞서갑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걸림돌이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님 댁에 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가 모였습니다. 형님 부부를 비롯하여 여섯 명입니다. 조카들도 모였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미리 모인 셈입니다. 점심 음식을 앞에 놓고 보니 명절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추석이 코앞인데 송편은 온데간데없고 떡국이 대신했습니다. 인절미가 있고 과일과 차가 있습니다. 형님을 위해 부드러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추석날 아침에 모였는데 작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형님이 갑자기 쓰러져 재활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명절의 모임은 생략되었습니다. 대신 형님이 가끔 집에 들를 때 형제들이 모입니다. 격려할 겸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환담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우울한 모습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두운 그림자가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형님의 건강 상태가 크게 호전된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차분하게 이성을 찾아가고 주위 사람들도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형님은 집으로 돌아올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습니다.

“부지런히 재활훈련을 해서 집으로 돌아와야지.”


본인이나 주위 사람 모두가 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형님이 집으로 돌아오면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미 집안의 구조를 손보았습니다. 휠체어가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도록 문을 크게 고치고 계단의 턱도 없앴습니다. 화장실 이용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공간을 넓혔습니다. 형님은 작년에 왔을 때 둘러보고 만족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재활훈련을 보다 열심히 하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습니다. 화단의 화초에 물을 주는 일은 자신의 담당이라고 말했습니다.


잠깐의 만남입니다. 식사 시간을 비롯하여 서너 시간입니다. 재활훈련을 열심히 하여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들의 차에 실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습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몸의 이상이 있었을 때 곧바로 병원을 찾았어야 했는데 미적댄 게 문제였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형님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남깁니다. 내 차례입니다.


“무조건 일어서야지, 재활훈련 열심히 해요.”


고개를 끄덕입니다.


형님이 떠나고 나이 든 사람들끼리만 카페에 앉았습니다. 오고 가는 말은 건강 이야기입니다. 조카의 시아버지도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사위의 희망 사항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형님만큼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형님이 지팡이를 짚고라도 기동 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조카사위는 장인이 부러운가. 봅니다. 부러워할 일만은 아닌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소망은 조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둘 꺼내는 말이 심상치 않습니다. 누구는 당뇨로 고생합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욕구를 자제해야 합니다. 누구는 어깨의 힘줄이 파괴되어 몇 차례 수술을 받고 건강의 회복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의사가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어깨를 잘 모셔야 합니다.”


무릎 수술도 했다고 합니다. 누구는 골다공증과 이명으로 고생합니다. 또 다른 나는 이빨에 이상이 있습니다. 고지혈증과 골다공증으로 힘들어합니다. 약에 부작용이 있어 몇 차례 약을 바꾸어 보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합니다. 오늘은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건강 상태를 폭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몸의 상태, 의사, 약, 건강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이야기에 열을 올립니다. 어느새 반의사가 되었고, 반 약사가 되었습니다. 몸의 상태 점검과 근육을 키우는 건강지도사도 되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사람도 되었습니다. 요양보호사, 활동 보조 지원사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와 관련된 사람이 세 명이나 있습니다. 집안 식구나 주위 사람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미리 교육받았습니다.


‘말로만 하지 말고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남기고 일어섰습니다. 갈 길이 바쁩니다. 내색하지 않아서 그렇지 많은 사람이 병을 달고 삽니다. 병원이 늘어나고 약국이 늘어납니다. 요양원도 늘어납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결과입니다. 아프지 않고 오래 살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터이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쇳덩이인 기계도 오래 쓰면 닳고 고장이 나게 마련인데 사람이라고 끝까지 온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골골대는 사람이 삼 년 간대요.”


평소에 잔병치레가 잦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입니다. 아프니 늘 조심하고 병원에도 자주 갑니다. 자기 몸을 최대한 아낍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가 봅니다. 우리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늘 편찮으셔서 아들들의 속을 태웠는데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숙모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집을 오면서부터 잔병이 많았는데 아직도 그 상태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고 의사와 친합니다.


나는 요즈음 병원에 가보지 않는다고 식구들로부터 핀잔을 듣습니다. 아픔을 참고 있다고 합니다. 몇 번 같은 증세로 병원을 찾았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약의 부작용이 있어서 몇 차례 약을 바꾸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약 처방을 새로 받았습니다. 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고 저러고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전에 수리한 어금니가 말썽입니다. 아무래도 뽑고 새로운 처치를 해야겠습니다. 의사가 이를 새로 해 넣어야겠다고 한 지가 몇 년이 지났습니다. 쓸데까지 써보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음식물을 전혀 씹을 수가 없습니다. 식구들이 걱정할까 봐 아픈 것도 아닌 척했는데 바른대로 말해야겠습니다. 병원 진료 날짜를 예약해야겠습니다. 슬그머니 수첩을 들칩니다. 전화번호와 그때의 견적서를 확인해야 합니다.


형님이 차 밖으로 말을 남기며 떠났습니다.


“사는데 사는 게 아니야, 삶의 질이 문제지. 미리미리 건강 챙겨.”


머리는 백발이고, 이제는 눈썹까지도 분칠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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