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4. 오늘은 처음 20230114

by 지금은

‘……어제, 오늘, 내일, 모레…….’


따지고 보면 모두가 오늘입니다.


눈을 떴습니다. 오늘이군요. 지금이군요. 그렇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서투른 존재입니다. 오늘을 어제처럼 살아보라고 하면 수월하겠지요. 겪은 과정을 되풀이하거나 조금 바꿔보는 겁니다. 어제는 어제로 끝났으니, 오늘은 새로운 삶이며 과정입니다. 늘 어제와 오늘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립니다. 어제는 해가 보이다 흐렸는데, 기온이 내려가 선뜻한 기분이 들었는데, 오늘은 초봄을 연상하는 기온입니다. 나뭇가지에 맺힌 물방울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주위를 수놓는 꼬마전구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투명전구입니다. 나는 가야 하는 길을 잠시 잊은 채 구슬 같은 이슬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얼굴이 구슬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코가 닿을 듯 말 듯 가까워졌습니다. 확대경으로 보는 것처럼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생각과는 반대로 물방울은 눈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가갈수록 점차 흐려지더니만 끝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릅니다. 멀리 보이는 산은 아름답습니다. 안개비에 보이는 모습은 산수화를 연상시킵니다. 저 안개가 물러가고 햇살이 비치면 싱그러운 얼굴을 드러낼 게 분명합니다. 봄기운을 품은 채 꿈틀거리며 눈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의 일입니다. 전문 서적을 얻고 싶어서 대한체육회를 찾았습니다. 60년대 빌딩이 많지 않은 시절입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낯설기에 주위를 둘러보고 잠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왕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무작정 버튼을 눌렀습니다. 문이 열리고 안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문이 스르르 닫혔습니다. 버튼의 숫자가 많으니 어느 것을 어떻게 눌러야 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사람이 탔습니다. 내려갑니다. 그가 내렸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사람들이 오르내립니다. 그들의 손가락을 주시했습니다. 위아래로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드디어 내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물어봤더라면 좋았을걸.’


집에 와서의 생각입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나는 그저 주위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라는 소문에 말을 걸기가 두려웠습니다. 서울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익숙한 편이고 모르는 것을 잘 물어보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에는 수시로 버벅댑니다.


아침에 ‘황금연못’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입니다. 참석자들이 노인들이고 보니 그동안 겪은 애환이 다양합니다. 70년대에 접해본 서양식 변기, 내가 어려움을 겪은 승강기, 이후 스마트 폰, 무인 발매기…….


요즘 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무인기입니다. 식당, 극장, 일반 매장에 가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기기의 사용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그때마다 착오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의 손을 빌릴 경우가 있고 주춤거리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조급함에 도와주기도 합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시골에 성묘 겸 벌초를 하기 위해 갈 때입니다. 시간에 맞추어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창구가 붐빕니다. 옆에 승차권 자동발매기가 있어 이용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시간을 넘기고 창구 앞에 기다려 다음 차를 타야 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점차 빨라지면서 배우고, 습득해야 할 것은 점차 많아집니다. 내일 새로운 무엇이 내 앞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아니 오늘입니다. 일상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신선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불안이나 두려움을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합니다. 멀리서 보면 산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새로운 것의 출현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불안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숲 속에는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편리함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기기들 속에는 낯선 사람의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즐거움도 있지만 이에 못지않게 애환을 각오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늘 처음이라 생각하고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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