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자랑 20210910
어려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벌교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돈 자랑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커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옛날의 벌교에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여수에는 부자가 많았나 봅니다.
오늘 신문에 유명 가수에 관한 기사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자랑을 하다가 망신당한 이야기입니다. 연예인들의 행사를 앞두고 가수는 유명 아나운서를 초대했습니다.
“연예인도 아닌데 내가 거기를 왜 가.”
친하게 지내니 꼭 초대하고 싶었나 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연예인 행사에 사회를 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들은 스케이트를 타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본인은 썩 잘 타는 것은 아니지만 기초단계를 벗어난 모양입니다. 스케이트를 이야기하며 함께 할 것을 권했습니다. 스케이트가 없으면 괜찮은 것으로 하나 사주고 연습도 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나운서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매달린 끝에 사회를 봐줄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행사가 시작되자 그는 헐어빠진 스케이트를 목에 걸고 나타났습니다. 행사장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새것으로 바꿔드릴게요.”
아나운서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모두 스케이트를 신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가수가 슬그머니 다가가 말했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어 가르쳐 드릴게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잡았습니다. 그가 발을 떼려 하자 아나운서는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는 상대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아나운서는 몸을 뒤로 한 채 가수의 손을 잡고 빙상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 후로는 그가 무서워졌다고 합니다. 사회만 잘 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숨은 재주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가 존경하는 사람은 두 사람이 있는데 다 어렵고 무섭답니다. 무섭다는 뜻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사람들에게 과시하지 않는 겸손함을 지녔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렇듯 학식과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표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쉽게 찾아낼 수는 없지만 종종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TV에 소개되는 ‘세상에 이런 일이’의 프로그램입니다. 다양한 방면의 소유자들이 얼굴을 드러냅니다.
‘허, 이럴 수가…….’
자신의 일상이나 전공과는 무관한 분야의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주된 직업이 음식을 만드는 일인데 화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든가,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사람인데 설치 미술을 한다든가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움터를 찾아 정식으로 배웠다든가 누구에게 사사한 것도 아닙니다. 독학에 의해 이룩한 경지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프로그램 진행자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내공이 보통 아닙니다.”
한 마디로 실전에 강한 사람들입니다. 정식으로 배운 사람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음이 분명합니다. 소질과 취미와 집념이 이뤄낸 결과입니다.
나 또한 망신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의 일입니다. 옆집에 아는 형이 있었는데 하 루는 바둑을 두자고 했습니다.
“바둑을 둬본 일이 없는데.”
“심심한데 가르쳐 줄게.”
시간이 날 때마다 배웠습니다. 잘한다는 말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드물었지만, 가끔 주위 사람들과 상대했습니다. 전적이 좋은 편입니다.
직장에서의 일입니다. 동료들로부터 한 친구가 바둑을 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둑을 둔다며.”
“잘 못해.”
바둑을 두고 싶던 나는 조르고 졸라 바둑판 앞에 앉았습니다. 나는 용감하게 백을 쥐었습니다. 이에 덧붙여서 몇 점을 붙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상대가 말했습니다.
“그냥 한 번 맞둬보고 정하지, 뭐.”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몇 급인 거야?”
“그냥 아홉 점만 붙여봐.”
“뭐라고?”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약이 올라 여러 판을 두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두 손을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는 남 앞에서 바둑을 둔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상대를 발견하지 못해서일지 모릅니다. 그들만의 리그는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가끔 시도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이따금 듣습니다. 축하의 말을 전하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을 흐립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는 바둑을 둘 수 있는 중간 급수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정도입니다. 평균치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맞두기도 하고 몇 점 접기도 하고 또 몇 점 깔기도 합니다. 이것도 자랑일까요. 나를 홍보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우리 나이에는 아직 겸손이 미덕인가 봅니다. 그러고 보니 바둑을 둔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지면 코로나 때문이라고 핑계나 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