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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26. 변화 20210921

by 지금은 Dec 22. 2024

추석입니다. 날씨가 말해주었습니다. 푸른 하늘이 뭉게구름을 가득 끌어안았습니다. 지금은 정동진 바닷가입니다. 몇 년 만에 와보는 곳인지 모릅니다. 그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그 넓은 모래밭은 좁아질 대로 좁아졌습니다. 집을 비롯한 인공물들이 그 자리를 빼앗아버렸습니다. 편을 가른 듯 일직선으로 그어진 그 건너편은 하늘이고 이쪽 편은 바다입니다. 구별되는 것은 짙음입니다. 바다가 더 푸릅니다. 구름이 하늘 편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작년 올해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변함없이 모이던 추석날의 가족 모임이 생략되었습니다. 형님이 병원에 입원한 후로는 차례도 제사도 미루어졌습니다. 대신 형님의 집 방문에 맞추어서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점심을 함께했습니다. 화두는 자연스레 건강입니다. 서로의 몸 상태를 드러내며 건강 유지를 위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차례는 올해도 생략될 것이고 산소의 벌초는 며칠 전에 겨우 마쳤습니다. 사촌 형제들과 일을 끝나고 조상께 인사를 올릴 때도 전과는 달랐습니다. 과일이며 술은 없습니다. 말없이 준비를 서로 미룬 결과입니다.


“절이라도 하고 가야지.”


내 말에 따라 형제들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오늘은 강릉에서 낮을 보냈습니다. 추석에 하지 않던 짓입니다. 추석 연휴로 기간이 길어지자, 집에서만 지내는 것은 무료하다며 아내와 아들이 생각해 낸 일입니다. 원래는 어제 가려고 했지만, 늦잠을 자다 보니 다음날로 미루었습니다. 아들은 직장 일이 많아서인지 늦게야 퇴근했습니다.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어제와는 달리 일찍 잔 때문인지는 일찍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밤중입니다. 시계를 보니 좀 더 자도 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눈을 감았지만 그만두었습니다. 머리가 맑아집니다. 살그머니 거실에 불을 밝히고 책을 들었습니다. 한 시간여를 머무르다 다시 누웠습니다. 선잠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기척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기대를 걸었나 봅니다. 그사이에 꿈을 꾸었습니다. 나만 홀로 어디론가 달려가는 길입니다. 숨을 헐떡입니다. 바람 소리가 들리고 물소리도 들렸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강릉 시내는 여느 도시처럼 자연미를 점차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시골의 정취도 살아있습니다. 나는 어느 곳을 가나 모습이 변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낍니다. 옛 정취 그대로를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대신 구경거리는 늘었습니다.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이곳저곳에 현대적인 구조물을 만들고 한껏 멋을 부린 건축물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제주도를 둘러보고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자연의 모습에 크게 실망을 느꼈습니다. 강릉이라고 다를 것은 없지만 새로운 구경을 하는 재미가 잠시 아쉬움을 잊게 합니다. 우리가 먼저 찾은 곳은 커피 박물관입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커피문화가 새로운 박물관을 탄생시켰습니다. 강릉의 맛 거리인 초당 순두부로 아침 식사를 하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공간을 메웠습니다. 거리 두기를 했지만, 코로나19를 무색하게 합니다. 아침 식사를 든든히 했지만, 맛은 보아야 했기에 빵과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유명하다는 말에 기대했는데 평소처럼 커피의 맛이나 빵 맛이나 그게 그거인 것 같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때가 맞지 않아서일까, 내가 맛에 둔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 관람객이 많을 줄 알았는데 우리 식구를 포함해서 다섯 명입니다. 건물 안에는 커피의 역사를 말해주듯 많은 집기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것들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라별로 사용되던 유물의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탁자며 의자도 가지각색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집에 있는 것이라면 버림 직한 것들이 건물 안은 물론 박물관의 야외에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을 보고 앉아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관람을 막 끝내자, 해설자는 세 곳의 커피 맛을 보여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 브라질, 온두라스의 것들이 유명하다고 합니다.


“첨가물이 달라서 커피 맛이 다르지. 그게 그거 아니야.”


늘 그렇게 말하던 내가 오늘은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을 줄이야,  세 곳의 맛이 다릅니다. 어느 것이 마음에 드느냐고 하기에 서슴없이 ‘온두라스’라도 말하자, 해설자는 나에게 한 잔을 그득 따라 주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취향이 각기 다르지만 내가 선호하는 것에 대한 표가 많았습니다. 나는 순한 맛을 좋아합니다. 평소에 느끼던 그대로입니다.


장소를 옮기며 미술관을 관람하고 정동진에 있는 시계박물관도 구경했습니다. 폐기된 기차를 여러 칸 연결하여 시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계가 그러하지만, 몇 가지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어서 잠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강릉은 커피의 고장이랍니다. 아들이 말하니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믿기로 했습니다. 서울에도 알려진 커피숍이 있다며 맛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미 날은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일이 조금은 부담이 됩니다. 온종일 아들 혼자 운전하니 피곤할 것만 같은 생각에 생략하고 싶었지만, 꼭 들르고 싶은 눈치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늦으면 커피 맛을 못 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한된 양을 판매한다기에 말없이 따랐습니다. 도착을 해보니 소문이 헛말은 아닌가 봅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좁은 길옆의 밭 가장자리에 겨우 차를 댔습니다.


“뭐야.”


가까이 다가가니 사람들의 행렬이 보입니다. 걸음을 재촉하여 그들의 뒤에 섰습니다. 언제 자리가 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커피를 받아 들고 차에서 맛을 보아야겠습니다. 잠시 후 앞치마를 두른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재료가 소진되어 더 이상 커피를 만들 수 없습니다.”


번호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리를 떴습니다.


‘이럴 수가…….’


소문이 틀린 말은 아닌가. 봅니다.


“인천에서 어렵게 왔는데 맛을 좀 보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종업원이 고개를 젓는 것과 동시에 아내가 내 팔을 잡아끕니다. 마감 시간이 열 시이지만 일곱 시경이니 아직 멀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재료가 없다는데 더 이상 조른다고 될 일은 아닙니다.


유명하다는 맛집을 찾다가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실내가 아기자기하다는 ‘돈가스’ 집은 휴업입니다. 점차 예약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어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계획된 일이고 보니 숙박을 정하지 못하고 당일치기로 행로를 잡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실망감을 안겨준 것만은 아닙니다. 명절로 인해 도로가 막힌 것도 아닙니다. 뻥 뚫린 길을 막힘없이 달렸습니다. 규정 속도를 넘길까 봐 속도계를 곁눈질했습니다.


“안전 운전.”


몇 번 되풀이하는 동안 명절을 하루 앞둔 강릉의 하루는 즐거웠습니다. 색다른 하루입니다. 우리 집 명절의 풍습도 서서히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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