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평생 글쓰기 20210926
나는 몇 년 전부터 매일 한 편의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평소 글쓰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정년퇴직 후에는 생각이 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써보려고 하니 뜻대로 되지 않고 머리만 복잡합니다. 뒤로 미루고 대신 책을 가까이했습니다. 여유 있는 시간이 나를 도서관으로 인도합니다. 자연스레 책이 손에 잡힙니다. 이렇게 독서 활동은 글쓰기를 앞서게 되었습니다. 한참 책과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루는 쓰레기를 버리러 쓰레기장에 갔다가 초등학생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한 권이 아니라 몇 년 치입니다. 남의 것이지만 그동안의 정성이 아깝다는 생각에 버려진 공책을 모아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삼십여 권이나 됩니다. 초등학생들의 일기장은 형식이 비슷합니다. 각자 쓴 내용들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길이나 쓰기의 흐름은 별 차이점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일기장에 빠져들었습니다. 같은 또래들에 비해 문장의 구성이 좋고 글씨 또한 반듯합니다.
이 아이의 일기장이 나의 마음을 빠르게 글쓰기로 이끌었습니다. 일상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배려가 있고 다툼도 있습니다, 생각의 깊이도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도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는 일기를 잘 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모의 빈정거림은 선생님의 칭찬으로 이어졌습니다. 내 일기장을 들춰보는 고모는 가끔 핀잔과 함께 문장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쓴소리는 결국 선생님의 칭찬과 연결되니 귀담아듣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부모들의 교육에 관한 관심이 더 많으니, 내용도 더 충실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친구 사이에는 글을 함께 쓸 수 있어도 일기는 함께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일기를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왠지 껄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잘못하다가는 내 치부를 보여주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나이를 먹을수록 일기 쓰기가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바쁘다는 핑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글을 써보니 주제나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 고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일기를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 어린이의 일기가 내 글쓰기를 부채질하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막막했던 소재와 주제를 떠올리게 되고 문장의 구성력도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책의 도움입니다. 모방은 곧 창조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마침내 흉내를 벗어나 자기의 독창성을 만들어 내게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창조입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생각과 경험을 떠올립니다. 이 속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존재합니다. 나는 자기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독서와 글쓰기를 권장합니다. 기록은 곧 역사입니다. 글은 숨어있는 기분 전환의 조력자입니다.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성장하는 거울이 되게 해 줍니다. 일상의 꼼꼼한 기록들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자기 계발입니다. 쓴다는 것은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를 다녀올 때 벼루, 먹, 붓, 조그만 공책을 몸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열하일기라는 작품의 여행기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영화 ‘가위손’을 만든 ‘팀 버튼’ 감독은 찢어진 노트나 헝겊 등 가리지 않고 기록하는 습관이 위대한 작품을 선사했습니다.
현대는 참 편리한 세상입니다. 스마트 폰이 필기구를 대신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녹음 기능도 한몫합니다. 나는 밖에서 중요한 일이나 영감이 떠오를 때면 스마트 폰에 간단히 저장합니다. 기록은 제 이의 머리입니다. 이처럼 일상의 생각들을 기록하는 것, 이것은 자기 계발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채우고 기록하다 보면 점차 꺼내놓을 것도 늘어납니다.
예전에는 사람 대부분이 기록을 위해 메모지나 공책을 사용했습니다. 지금 나는 그 단계를 벗어나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물론 메모지도 사용합니다. 책 속의 누군가가 자랑하는 공책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록한 열여덟 권의 대양 노트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부러운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컴퓨터의 자판은 내 생각을 훨씬 빠르게 화면에 기록합니다. 자판의 단추를 익힐 때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날린 경우도 있습니다. 저장을 잊었을 때입니다. 허무한 마음에 한동안 바닥을 내려다보거나 하늘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생각을 되돌려 작업을 다시 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소설가가 아닙니다. 시인도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여덟 권의 공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이것저것 쓰다 보니 이제는 그만큼의 글이 쌓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것들은 책장에 진열되어 남의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숨어 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의 정도가 자그마한 저장 장치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며 해 뜰 날을 기다립니다. 같은 크기의 저장장치가 몇 개 됩니다. 쓴맛을 종종 본 나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같은 내용을 여기저기 분산시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왕조실록 사대 사고가 생각납니다. 내 글은 실록과 비교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자산입니다. 나라에서는 재난에 대비하여 같은 자료를 분산시킨 것처럼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젯밤에는 글을 쓰다가 원고의 반을 날렸습니다. 무엇엔 홀린 느낌입니다. 속상한 마음에 두런거리자, 아내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뭔 일 있어요.”
“날렸지, 뭐.”
“한동안 잠잠하더니만, 또.”
물을 한 컵 입에 쏟아붓고 책상 앞에 앉아 사라진 내용을 더듬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마음대로 다 된다면 뭐 걱정할 것이 있겠습니까. 어젯밤은 길었습니다. 늘어진 밤은 더 길지도 모릅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 자판 두드리는 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