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중국인 촌 20211011
중국인 촌은 울긋불긋합니다. 내가 중국을 모두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인천에 있는 중국인 촌은 빨강에 노랑입니다. 딱 한 번 중국 베이징을 구경한 일이 있습니다. 중국 시내의 천안문광장을 비롯한 유적지와 만리장성을 둘러보았습니다. 세월을 더듬어 보니 벌써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학교에 매여 있던 관계로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는 이월의 방학 첫날을 출발점을 잡았습니다. 대부분 계절의 날씨가 그러하듯 이월은 을씨년스럽습니다. 흐린 날이 많고 동장군이 마지막으로 기승을 부리는 추위 또한 매서운 날도 있습니다. 여행 중 베이징의 날씨는 내 추측보다 더 나빴습니다.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겠나 했는데 여행 내내 하늘은 늘 찌푸려 있고 추위는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복을 챙겨 올걸.’
나는 그동안 내복을 잘 입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느낌에 두꺼운 겉옷으로 견뎠는데 별 무리 없이 지냈습니다.
지금까지도 베이징을 생각하면 내가 둘러보고 느낀 것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잿빛 하늘과 살을 파고드는 추위입니다. 인천의 중국인 촌의 화려함과는 달리 큰 규모의 칙칙함이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그때의 기억보다는 많이 정돈되고 화려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을 해봅니다.
올해의 가을은 예년에 비해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구월과 시월을 들어서면서 장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일기예보를 읽었습니다. 오후부터는 흐리거나 개일 거라고 합니다.
“여보, 자장면 먹으러 공화춘으로 갑시다.”
함께 전철을 타고 인천역에 도착했습니다. 역을 중심으로 바닷가 쪽은 월미도, 자유공원 쪽은 중국인 촌입니다. 입구에 들어섰지만, 재작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습니다. 달라진 것이라면 구경을 온 사람들입니다. 가계도 물건도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천천히 언덕길을 오릅니다.
“저곳이야”
“맞아.”
내용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대뜸 이심전심이 통합니다. 중국집을 배경으로 드라마를 촬영하던 건물이 보입니다. 전에 왔을 때 몇몇 배우들과 촬영 담당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한참 구경했습니다. 며칠 후 텔레비전에 그 모습이 그대로 보였습니다. 걸음을 옮기다 보니 달라진 점이 보입니다. 언덕을 넘어가자, 중국인 거리가 더 확장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먹을거리와 볼거리의 장소가 늘어났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거리나 건물들이 깨끗하게 단장되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끼어있던 충충하던 빌라는 세수를 하고 막 화장을 한 것처럼 산뜻함을 드러냅니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가 올 때마다 들렸던 음식점 앞에는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동아줄을 늘인 것처럼 사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문 앞쪽으로 다가갔더니 안내문이 보입니다. 방송국에서 맛집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방송국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있습니다. 이 집에서의 식사는 포기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노상에서 한 시간 이상은 줄을 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우의 신 포도일까요. 맛집, 맛 하지만 나는 맛집을 늘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강원도 영월을 갔을 때입니다. 맛집으로 소개된 올챙이 국숫집을 찾아갔지만, 다른 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입맛이 서로 다르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는 해도 소문난 맛집이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습니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우후죽순으로 맛집을 소개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마가 끼는 일이 있나 봅니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암묵의 거래가 있는 예도 있다고 합니다. 음식에 대한 열정과 친절이 우러나야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터인데 노력을 뒤로하고 홍보에만 열중하는 곳들이 있는 모양입니다. 훌륭한 맛집이라고 소개되었는데 얼마 못 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업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속에는 단골이라는 이미지가 숨어있습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 찾아가는 집이 있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단골이었는데 먼 곳으로 이사를 하고도 맛을 못 잊어 찾아가는 일이 있습니다. 단골은 이 세상에서 맛뿐이겠습니까. 사업상 있을 수도 있고, 의식주 또는 여행과도 연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친절해서 찾아가기도 하고, 정확해서, 고마워서, 물건이 좋아서 찾아가기도 합니다.
나는 식도락가가 아니니 맛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생각보다 푸짐하게 한 상 차려 주면 마음이 흡족합니다. 지난날의 배고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 집에 처음 들렀을 때, 그 주인도 막 개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음식을 시켰는데 생각지 않은 낙지 한 마리가 그릇 위에 앉아 있습니다. 다른 음식점에서 만나지 못한 광경입니다.
“입맛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두 손을 모으고 수줍은 듯 겸손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맛집의 비결은 초심을 잃지 않는 정성과 친절이 속에 숨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공갈빵을 샀습니다. 공을 치듯 손이 움직였습니다. 달걀보다 쉽게 부서집니다. 내용물이 없이 껍질뿐입니다. 공갈빵은 맛이 공갈일까요. 그냥 심심풀이로 먹을 만합니다. 천천히 자유공원을 향해 계단을 오릅니다. 알려진 맛집이 여우의 신 포도가 아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