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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3. 걷기 20211009

by 지금은

누군가 말했습니다.


‘젊어서는 살기 위해 걷고 늙어서는 죽지 않기 위해 걷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걷는 편입니다. 어려서나 젊어서는 차비가 아까운 생각에 걷고 늙어가면서는 몸에 이상 신호가 온다는 느낌에 열심히 걷습니다. 내가 무엇인가 알고 시작한 행한 행동은 아니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열심히 걸었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면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과 운동이 빠질 수 없습니다.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의사는 빠짐없이 이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약방의 감초입니다. 일상생활이 바빠서 운동할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걷기를 권합니다.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입니다.

나는 건강을 신경 쓴다고 걸은 것은 아니지만 초등, 중고등학교 때는 등하교 때 부지런히 걸어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시골에서 학교에 다녔으니 차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자전거도 귀한 시절이었으니 말입니다. 중고교 시절 차비를 아낀다면서 걸었는데 신발값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교통비로 따진다면 차비보다는 운동화값이 덜 들었는지 모릅니다. 돈을 푼푼이 모아 책을 사는 재미가 한몫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전날 생각에는 오랜만에 서울 마로니에 광장을 구경하고 극장가도 둘러볼 계획이었습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온종일 비가 오락가락한다기에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집 앞에 있는 컨벤션센터의 마당에 이르렀습니다. 광장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혼자 거닐기에 딱 좋습니다. 그렇다고 별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자체로 황량한 느낌이기는 해도 내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걸을 수 있기에 선호합니다. 분위기만 말한다면 옆에 있는 공원이 한결 돋보입니다.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생각을 외롭지 않게 합니다.


나이 들다 보니 점차 몸에 이상의 신호가 나타납니다. 종종 두통이 찾아옵니다. 치아도 하나둘씩 빠집니다. 혈압도 불규칙하게 오르내립니다. 고지혈증도 있고 당뇨 수치는 위험의 경계선에서 눈치를 봅니다. 그동안 건강에 대해 소홀히 했나 봅니다.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확신이 허물어지면서 점차 건강에 관해 관심이 늘어납니다. 병원의 출입이 늘어납니다. 자연스레 먹는 것과 움직임에 마음을 둡니다. 건강식이 뭐고, 유산소 운동, 무산소 운동 등에 대해서 아내와 종종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점차 단백질 식품과 채소에 마음이 옮겨갑니다. 밥과 국의 양이 줄었군요.


광장의 끝에 발을 디뎠습니다. 시작입니다. 마당은 옅은 검은색과 회색의 블록이 긴 띠를 이으며 교대로 반복되어 무늬를 이룹니다. 한눈에 보면 이방연속무늬입니다. 회색 블록의 긴 줄을 걸은 다음에는 검은색 줄로 옮겨갑니다. 이렇게 옆자리 옆자리로 옮기다 보면 반대편 블록이 끝나는 곳에 이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습니다. 나도 처음 몇 번은 지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 걷다 보니 지루함은 잊히고 시간이 단축되는 느낌입니다. 눈에 익어서인지 모릅니다.


내가 이 광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광장을 다 걷고 나면 만보기를 확인하지 않고도 내가 움직인 걸음 수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오차는 크지 않습니다. 삼백 보에서 오백 보 이내입니다. 마스크를 벗고 걷다 보니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이 있으면 슬그머니 블록을 옮겨 걷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으로 걷는다 해도 오차는 있게 마련이지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봅니다. 누구를 탓하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의 원인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그보다는 부지런히 걷는 중이니 벗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가 싫은 이유입니다. 마스크를 계속 쓰고 걷다 보면 열기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입과 코를 비롯한 언저리에 습기가 차서 불편합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온다 싶으면 팔을 '니은'자로 꺾고 보폭을 넓혀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나 지금 운동 중이야.’


무언의 표시입니다. 운동 중에 마스크를 쓰면 답답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오늘은 한글날입니다. 공휴일이라서 광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에 나왔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습니다. 휴일이니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아 주차장도 한가합니다. 걷는 내내 서너 사람만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개를 데리고 산책 중이었습니다. 어두울 무렵이면 시작하던 발걸음이기에 낮의 분위기는 다소 낯설어 보였지만 곧 적응했습니다. 두 칸을 옮겨가자 이내 걷기에 빨려 들었습니다. 멍을 때리며 걷는 중입니다. 걷기를 마치고 걸음 수를 생각했습니다. 팔천 보쯤 생각했는데 맞았습니다. 만보기를 확인해 보니 백여 보의 차이를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구천 여보 이상이 될 것입니다. 만 걸음을 채우기는 틀렸습니다.


처음 걷기를 시작했을 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만 걸음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요즈음은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칠천 보, 팔천 보, 구천 보면 어떻습니까. 건강을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된다는 마음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동안 걷지 않은 공원이 몇 군데 있습니다. 이 공원은 재미없는 광장을 걷는 것이 지루할 때 이용해야겠습니다. 지루함을 달래주는 방법으로는 낯선 곳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굳이 따진다면야 낯설 이유가 없습니다. 그동안 자주 다녔으니 안 봐도 훤합니다. 계절이 변하니 모습도 변한다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앞가슴이 축축합니다. 오늘의 날씨 예보입니다. 가을치고 더울 거라는 아나운서의 말이 맞습니다.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야외 수도 가에서 세수하고 팔등에도 물을 묻혔습니다. 이거 가지고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집에 가서 곧 샤워해야겠습니다.


두통이 사라졌습니다. 목의 뻣뻣함도 사라졌습니다. 걷는 만큼 건강이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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