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모르는 게 약은 아니지요. 20211028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
나는 요사이 며칠 고민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냥 넘어갔으면 좋을 일을, 원인은 관심이 많아서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음이 허전하고 빈 것만 같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배움을 계속 이어왔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살피고 인터넷의 공간을 뒤집니다.
복지관에서 그림책 자서전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다기에 전화했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은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면접이 필요하다며 기준에 통과되어야 수강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해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하루를 꼬박 고민하다가 다음 날 전화를 했습니다.
전에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다고 하니 담당자는 선뜻 승낙했습니다. 글로 표현했으면 좋겠는데 사진이 주가 되는 모양입니다. 글 쓰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진에 비해 글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봄에는 사진을 찍어 나름대로 편집을 해보기도 했지만 익숙해지려면 멀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사진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을 예정이라니 다행입니다. 수강 신청을 하고 은근히 고민이 됩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자서전이라고 하니 내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과 집으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의 장소를 옮겨가며 기억에 남을 만한 것들을 머리에 담아봅니다. 많이 옮겨 다녔습니다. 직업상 직장을 옮기는 것도 여러 차례이지만, 이사를 한 것은 어림잡아 20~30회입니다. 가는 곳마다 몇 가지의 추억들이 바구니에 담깁니다.
‘기둥을 무엇으로 할까?’
내가 변화하는 외양의 모습을 중심으로, 집을 중심으로, 계절의 변화하는 나무를 소재로…….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고민합니다. 어젯밤에는 평소보다 다소 일찍 잠자리에 들기는 했지만,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입니다. 다시 눈을 붙이려고 했으나 점점 머리가 맑아집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현관 쪽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납니다. 미루어 짐작하니 신문이 도착했음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잠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신문을 펼쳤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습니다. 신문을 접어 두려다가 다시 앞면을 펼쳤습니다. 그림책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그림이 있을까 하고 광고란까지 뒤졌습니다. 나에게 쉽사리 영감을 줄리 없습니다.
미리 마련해 둔 엽서 크기의 종이를 펼쳤습니다. 생각이 나는 대로 무작정 펜을 움직입니다. 유아의 손이 움직이듯 멋대로 선이 움직이며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립니다. 큰 어미나무가 드러났습니다. 작은 이파리 두 개를 머리에 인 어린나무가 큰 나무 밑에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무인지 풀인지 가늠할 수 없는 작은 나무, 내가 틀림없습니다.
봄입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내 생일날입니다. 갓난아이를 보듬듯 명주실 같은 비가 머리 위로 내려앉습니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오죽하면 며칠 못 넘기고 죽을 것 같다고 말했겠습니까. 내 돌맞이 날, 상 앞에 있는 물건 중에 실타래를 잡았더군요, 살아나야겠다는 심정이었을까요. 유년기 때도 몸이 매우 허약했습니다. 가난하다 보니 먹을 것이 늘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먹을 것이 목구멍으로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먹는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데 원인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젊어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몸이 튼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늘 조심해야 한다는 마음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공부 외에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없었습니다. 성적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고 집안 식구들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건강만이라도 챙겼으면 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중학교 때는 제법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급은 물론 학년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철이 들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력이 있는 학생들이 들어간다는 국립학교이지만 막상 입학하고 보니 적성에 맞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고민했습니다. 졸업하면 철도청 산하 기관에 취업이 보장되지만, 대학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전공과목은 소홀히 하고 대학입시 준비에 신경을 썼습니다. 독학입니다.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없어 퇴사를 했습니다. 다시 재수하여 교육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어렵사리 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경기도의 벽지 학교에 부임했습니다. 두 번째 학교를 거쳐 인천의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몇 차례의 정기 전보로 학교를 옮겨 다녔습니다.
생활의 변화를 맛보고 싶은 나는 섬의 학교에 지원하여 한동안 근무를 했습니다. 이때가 나에게는 제일 좋은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식구들처럼 지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붓글씨를 쓰고, 바느질을 배우고, 리코더, 악보 읽기, 체육 기능, 그림 그리기 컴퓨터 등을 익혔습니다. 초등교육을 위해서는 다재다능해야 합니다. 도서벽지 학교에서 근무할 때는 숙직실이 내 공부방이 되었습니다. 도시학교에서는 교실이 내 공부방이 되었습니다. 내가 주위의 선생님들보다 무식하다는 생각에 열심히 노력하고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국가에서 학비와 피복비를 무료로 지원해 주는 국립고등학교이기에, 졸업하면 곧 취업이 보장되는 관계로 힘들게 입학했지만, 나는 이때가 나에게는 제일 안타까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인문 과목은 주당 국어, 수학, 영어 두서너 시간뿐 그 밖의 것은 모두가 철도 과목입니다. 철도청 근무를 그만두고 보니 나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나 학부모로부터 손가락질받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학교에서 중요한 행사나 일이 있을 때는 약방에 감초처럼 얼굴을 내미는 일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배움은 끝이 없습니다. 퇴직하고서도 배움은 계속됩니다. 종이접기 강사 자격시험, 한자 검정시험, 아동미술지도사 시험, 독서지도사 시험 등에 도전했습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노력한 결과인지 어렵지 않게 통과되었습니다. 인천시 주체 도전 골든벨 대회에서 2회에 걸쳐 입상했습니다. 부상으로 호텔 숙박권도 받았습니다. 수필 쓰기 대상, 동화 쓰기 우수상, 시 창작 대회 최우수, 그림책 출간 2회 등의 성과도 있습니다.
칼림바 연주에도 신경을 쓰고, 그림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배움도 습관인가 봅니다. 끝이 없습니다.
“이 나이에 배워서 뭐 하게.”
맞는 말입니다. 이제 배워서, 익혀서 무엇에 쓰겠습니까만 꼭 쓰는 것보다 배우는 재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배우는 것이 그냥 좋습니다.
그림책 한 권 내봐야지요. 이번에는 전자책이라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