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 가을에는. 20211029
가을이 아람 벌었습니다. 바닥에 낙엽들이 쌓이기 시작합니다. 호숫가의 부들은 여름 내내 몸통을 불려 터질 듯 통통해지더니만 소화가 되었는지 거죽에 힘을 잃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 도서관에 다녀오겠다며 길을 나섰습니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광장의 활엽수들이 붉게 타고 있습니다.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여 아직 햇볕을 받지 못한 나뭇잎들은 개성을 보이지 않은 채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둠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상태에서 정오의 햇살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외양은 빨강이든 노랑이든 초록이든 시간이 말해 줄 것입니다.
나는요, 며칠 사이 눈을 뜨면 우선 창가로 다가갑니다. 어둠을 걷어내는 빛이 짙어짐에 따라서 서서히 변하는 나무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가장 멋진 색이 눈에 들어올 때면 주방에서 갈잎 냄새를 피우는 아내를 불러 세웁니다. 혼자 보기가 아깝습니다.
“빨리 와 봐요.”
하지만 몇 초 동안 밖의 동정을 살피고 아내는 돌아섭니다. 아무래도 주방에서 끓고 있는 음식물이 마음에 걸립니다. 언제나 오롯이 창밖을 감상하는 것은 나입니다.
집 앞에서 셔틀버스에 올랐습니다. 운전기사, 안내원과 인사를 나눕니다. 나는 곧 모자를 들어 올리고 안내원의 얼굴 가까이 이마를 내보입니다.
“36,5도”
코로나가 만들어 낸 풍경입니다.
세 번째 자리에 앉자마자 기사의 말이 들리기 전에 ‘찰칵’ 소리를 내며 안전띠를 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의 단풍은 한층 더 곱습니다. 아파트 광장의 단풍보다 더 곱습니다. 선팅의 효과입니다.
요즈음은 걷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갑자기 가을이 쏟아진 덕분입니다. 걷다 보면 나를 잊어버립니다. 멍 때리는 일이 잦아집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발길을 옮깁니다. 더구나 처음과는 달리 목적지는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올 때는 집으로 가야겠다고 지름길을 정했는데 발걸음은 집과는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는 동안 이것저것 눈에 넣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한참 만에야 나를 알아차렸습니다.
‘지금 내가 무얼 하는 거야.’
아내는 지금 식탁에 점심을 차려놓고 있을 겁니다. 늘 정해진 시간에 식사하는 버릇이 길들어 있다 보니 배꼽시계는 정확합니다. 순간 ‘어쩌지’하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다시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왕 늦은 일이니, 발길에 마음을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를 가도 저기에 가도 나무가 있는 곳이면 붉음입니다. 삭막하기만 하던 지역이 해가 거듭되니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은 덕분입니다. 팔목만큼이나 작은 활엽수들이 세월을 안아 코끼리 다리만큼이나 굵어졌습니다. 여름에는 땡볕을 가려주는 초록 우산이 되어주더니만 이 가을에는 빨강 우산, 노랑 우산, 찢어진 우산이 되었습니다. 찢어진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어 현란한 빛을 발산합니다.
나는 나무 밑으로 들어가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를 연출합니다. 나무 아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봄이 시작되면서부터입니다. 꽃이 만발하는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나무 밑을 어슬렁거립니다. 벚꽃, 살구꽃, 배꽃 등, 꽃들이 하늘을 뒤덮은 공간은 마법의 세계입니다. 낮에도 순백의 전구들이 공간을 밝힙니다. 여름은 초록 아니면 녹색의 불빛입니다.
나는 지금 가을을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바람이 ‘휘익’ 나뭇가지를 흔듭니다. 단풍잎들이 가지의 휘둘림에 몸서리를 치며 공중에 흩어집니다. 낙엽들이 소나기처럼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듯 바람이 한차례 나뭇잎들을 공중에 날렸습니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냈습니다. 이 장면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찰칵찰칵’ 연이어 몇 차례 화면에 담았습니다. 나무들이 조용히 숨을 죽입니다. 멋진 예감이 듭니다. 화면을 펼쳐봅니다.
‘생각 같지는 않은데…….’
방금 본 현실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마음속에 담겨있는 화면이 기억에 더 오래 머물 것 같습니다. 곧 지웠습니다. 가을은 지금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음의 가을을 위해서는 그냥 지나치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멍 때리며 마냥 걸어도 좋을 가을
이 가을에는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