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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8. 검문 20211103

by 지금은

군사경찰(헌병)이 내 곁으로 다가와 거수 경례 를 하며 신분증을 요구했습니다.

“검문하겠습니다. 함께 내리셔야겠습니다.”

내 신분증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초소로 향했습니다. 신원을 확인합니다. 나는 이미 병역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머리로 인해 혹시 무단 외출이나 탈영병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샀습니다. 장발 시대에 짧은 머리는 오해를 살 만합니다. 더구나 북한의 간첩이나 무장 공비가 출몰하던 시기입니다.


“군에 입대하십니까?”


출근하자 먼저 와 있던 선생님이 뜻하지 않은 질문을 했습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자, 그의 표정도 바뀌었습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오늘 뜻하지 않은 변신을 한 셈입니다. 장발이 유행이던 시절, 내 머리는 갓 입대한 훈련병의 모습입니다. 얇은 귀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오전에 친구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잡상인으로부터 머리빗을 하나 샀습니다. 요술 빗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머리를 빗기만 하면 자연스레 머리칼이 잘려 단정해집니다.”


이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으니,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빗기만 해도 머리가 단정해진다는 말에 아끼는 용돈을 투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섰습니다. 빗을 머리에 대려다 멈추었습니다. 기술도 없는 내가 거울을 보고 내 머리칼을 가늠해서 자른다는 것에 선 듯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내 머리를 좀 빗겨줄 수 있을까?”


여동생에게 빗을 내밀었습니다.


“무슨 일이래,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동생은 새 빗을 받아 들고는 요리조리 살핍니다.


“면도날이 붙어있네.”


설명을 들은 동생은 빗을 나에게 건넵니다. 머리를 빗길 자신이 없답니다. 잘못했다가는 머리카락이 뭉텅 잘릴 거랍니다. 내일 출근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 어린 말을 했습니다. 설득 끝에 빗질이 시작되었습니다.


“잘못되어도 원망하지 않기.”


동생의 손놀림이 조심조심, 봄날 호수 위의 얼음판을 걷는 듯합니다. 나는 동생을 믿습니다. 평소에 늘 침착하고 신중한 태도 때문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동생의 손놀림이 점차 익숙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손거울을 보고 있노라니 생각 같지 않다고 하면서도 빗질은 규칙적입니다.


“머리를 움직이면 안 돼, 움직이면 안 돼.”


수시로 반복합니다. 돌부처가 되었습니다. 동생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숨 쉬는 것까지 조심스럽습니다. 참다가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동생의 빗질을 잠시 멈추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덥수룩하던 머리칼이 가지런히 모양을 갖추어 갑니다. 마음이 흡족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거울에 번집니다. 이발비를 벌었습니다. 동생과의 우애도 더욱 돈독해질 것입니다.


누가 왔나 봅니다. 철 대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대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순간 머리의 느낌이 이상합니다.


“어머머”


동생의 짧은 떨림입니다. 어쩔 줄 모르는 표정입니다. 손이 머리 뒤로 다가갔습니다. 감촉의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많이 잘린 거야.”


“흉해.”


“잘 다듬으면 안 될까?”


큰 거울에 작은 거울로 뒷모습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머릿속이 허옇게 드러났습니다. 뭉텅 잘렸습니다. 몇 차례 빗질하던 동생이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재주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이발소에 가든 말든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애들이 장난을 쳤나 봐요.”


“예.”


“개구쟁이인가 봐요.”


“예.”


이후로 한 달여 이상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다름 아닌 검문입니다. 퇴근할 때면 군사경찰들이 근무하는 고갯마루의 검문소에서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고사떡을 가지고 오지만 않았어도, 대문을 두드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변고는 없었을 텐데 하다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아니 내가 좀 더 조심했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겁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의 장면입니다. 하필 소년과 소녀가 만났을 때 소나기가 내릴 게 뭐람. 건강이 좋지 않은 소녀였지만 소나기로 인해 병이 악화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소년의 마음은 아팠습니다. ‘검문’이란 단어는 그 시대에 별로 좋은 낱말은 아닙니다. 나의 청년 시절은 시국의 불안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검문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장발, 미니스커트, 데모, 탈영, 야간 통행금지, 나의 짧은 머리까지도.


이제는 검문이 예전같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요즈음 대표적인 것을 말하라면 서슴없이 교통에 관한 것을 들겠습니다. 이중에도 ‘음주운전’을 떠올립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심심찮게 음주 단속 기사를 봅니다. 음주 운전이 곱게 끝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재물의 파괴나 인명사고로 이어집니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에 관련되는 것이니 철저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검문’이란 말이 거슬리기는 해도 국민의 행복과 관련된다면 시대정신에 맞게 유지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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