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열성이 빚어낸 일 20211123
자화자찬이기는 해도 나는 가는 학교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수업 기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친절해도 아닙니다. 지금 생각입니다. 때에 맞추어 아이들의 분위기를 잘 파악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해마다 시행되는 수업 공개에서 별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수업 때마다 동료들이나 학부모, 장학사등이 두려운 대상이었는지 모릅니다. 나뿐이겠습니까. 대부분 교사가 공개수업을 꺼립니다. 더구나 행사가 있을 때 학년 대표나 학교의 대표로 수업을 공개해야 할 때 대부분 회피하려는 눈치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줍음이 많고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학생들과 있을 때와 누군가의 참관 수업이 있을 때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릅니다.
“선생님, 왜 어름 땡이 되셨어요. 음성도 떨렸어요.”
“우리도 어름 땡이 될 뻔했어요.”
“요즈음 바빠서 얼음 땡을 못 했잖니.”
공개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 하며 긴장했던 마음을 풀 듯 어수선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교실의 분위기를 완전히 망쳐버렸습니다. 내가 빗어낸 결과입니다. 학기 말 중간고사를 앞두고 학급의 성적을 올리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하여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동안 배운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이리 나와.”
내 큰 소리에 대답을 못 한 아이의 얼굴이 경직되었습니다.
“빨리”
험악한 내 모습에 상냥하던 아이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진 채 움직이지 않습니다.
“숙제를 잘해오라고 했는데 뭐 한 거야.”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나는 그 아이를 밀치며 머리에 꿀밤을 주었습니다. 군밤이 아니라 얼굴을 세차게 때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머리를 피하는 과정에서 내 손가락이 코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주르르 코피가 흐릅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휴지를 가져다 코를 막아주었지만, 생각 같지 않습니다. 세게 맞았나 봅니다. 코피가 멈출 줄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양호실로 향했습니다.
‘이를 어쩌지.’
보건 선생님이 출장 중이랍니다. 흰옷의 앞자락에 핏물이 떨어집니다. 수돗가에서 세수시키고 웃옷을 벗겨 물에 헹궜습니다. 새빨간 핏물이 흐려지며 흰 천을 물들입니다. 이게 아니었는데 하며 걱정이 앞섭니다. 교실에 들어와 코피가 멈추기를 기다려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퇴근하고 너희 집에 갈게. 부모님께 있는 대로 말씀드려.”
혼자 가기가 두렵습니다. 아이만큼이나 상냥하고 붙임성이 있는 학부모지만 일이 꼬이고 보니 얼굴을 대하기가 불편할게 분명합니다.
퇴근 후 지난해에 담임했던 선생님과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예견된 결과입니다. 집에 들어서자, 푸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의 평판이 좋아 기대되었는데 실망입니다. 내 성격상 뭐 할 말이 있습니까. 듣고 있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랄 수밖에.
“미안합니다. 잘해보려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말이 끝날 때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옆에 있던 여선생님의 이야기가 삭막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다과가 차려지고 그 귀하다는 양주도 내왔습니다.
“하지 않을 말을 해서 미안합니다. 선생님께서 잘해보려는 의도였던 것을 알면서도 옷자락을 보니 감정이 욱했나 봅니다.”
나는 훌륭한 교육자는 못됩니다. 스스로 인정을 합니다. 첫 번째 학교에서의 일입니다. 경험이 없는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숙제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핑계로, 친구와 싸웠다는 이유 등…….
하루는 나를 잘 챙겨주는 여선생님과 회초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체벌은 안 돼요.”
“귀한 놈은 매가 석 대라는데요.”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여선생님은 나에 대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나의 체벌은 교육적,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면서 끝을 맺었습니다. 내가 완전히 체벌에서 손을 뗀 것은 토론 후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교육 서적을 탐독하면서, 체벌에 대한 부작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입니다. 매를 들면 안 되는구나, 경험으로 매는 매를 다시 부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조언이 맞았습니다.
나는 수업에 관한 기술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가르치려는 마음에 배움의 끈은 놓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능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민속놀이를 하는 계절의 학습, 체험학습인 수영장, 스케이트장에서는 단연 인기입니다. 체험학습을 끝낸 후는 몇 주일이나 내 이름이 아이들 입에 오르내립니다.
이년 후의 일입니다. 코피를 흘렸던 아이가 음료수를 사 들고 어머니와 함께 교실을 방문했습니다.
“선생님 저 전학 가요. 가서 편지할게요.”
나와 함께 공부했던 때가 제일 재미있었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꼭 뵙고 가야 한다고 해서 인사 겸 따라왔다고 했습니다. 외면했을 것 같았던 아이가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교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