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2. 엉뚱한 일이 20211212
이학년을 담임했던 1985년 늦은 봄날입니다. 내가 수업 중 말썽쟁이 아이와 입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에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맨 뒤편 출입구 쪽에 앉은 아이가 눈을 꼭 감은 채 부처처럼 앉아있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의자 밑에 물이 고여있습니다. 순간 오줌을 쌌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두 책상에 엎드려.”
갑작스러운 외침에 아이들이 일제히 책상 바닥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교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이럴 경우에는 재빨리 집으로 돌려보내는 게 상책입니다.
“이 녀석 머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지 얼굴만 찡그리고 있으면 다야.”
엉뚱한 소리를 하며 내 체육복 윗도리를 펼쳐 소매로 허리에 질끈 매 주었습니다. 귓속말을 했습니다.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와.”
우리 반에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할 두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소아 당뇨환자이고 또 한 아이는 분노 조절이 어려워 시시각각으로 마음이 변합니다. 늘 눈에 넣고 있어야 합니다.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에는 나에게 말을 해주면 좋으련만 두 아이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다 싶으면 재빨리 말을 하라고 했지만 늘 지켜지지 않습니다. 평소에 표정을 살피고 있지만 오늘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습니다. 잠시라도 교실을 비울 수가 없습니다. 소아 당뇨를 앓고 있는 아이는 늘 꼿꼿이 앉아 있다가 가끔 나무도막 쓰러지듯 바닥으로 픽 쓰러집니다. 뇌진탕이라도 일으키면 큰일입니다. 재빨리 안고 보건실로 달음질칩니다.
‘얼굴 표정이라도 달라지면 좋으련만.’
한 아이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때에 관계없이 소란을 피웁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한두 시간은 수업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들의 참관 수업이 있었는데 아이가 날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진 일도 있습니다.
며칠 후 아침에 오줌싸개 아이가 수줍은 얼굴로 쇼핑백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 옷 가져왔어요.”
조그만 메모지가 들어있습니다. 아이들이 모르게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말입니다. 며칠 동안 입었던 후줄근했던 옷이 주름하나 없이 깨끗한 옷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아이는 키가 크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마음이 여립니다. 소리소리 지르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끝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비상수단을 썼습니다. 갑자기 내 언성이 그 아이의 목소리보다 높아졌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반 아이들 전체가 깜짝 놀라 일순간 얼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 목소리에 놀라 오줌을 싸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이는 물론 부모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 터인데 고맙다는 메모지를 받았습니다.
지난여름에 전철역에서 우연히 이 아이와 마주쳤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흰머리칼이 듬성듬성 있는 어른입니다. 옛날 담임선생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가와 손을 잡아준 것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학교의 이름과 학년을 말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잠시 얼굴을 더듬어야 했습니다.
" 아! 맞아. 오줌싸개."
"에이, 선생님도."
"미안, 만나자마자 실수를 했군."
손을 잡고 커피숍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 냉커피 드세요."
"화장실 자주 가면 귀찮을 것 같은데."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대신 갔다 오면 되는데요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