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16. 눈이 내리면 20230116.

by 지금은

‘군밤, 군고구마, 홍시, 찹쌀떡…….’


입맛을 다십니다. 눈이 내리는 밤이면 먼저 먹을 것을 떠올립니다. 텔레비전을 끌걸 그랬습니다. 홈쇼핑에서 군밤과 군고구마를 팔고 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채널을 돌리자 공교롭게도 홍시를 팔고 있습니다. 곶감도 있습니다.


‘이를 어쩌지.’


“여보, 이리 와 봐요.”


“알았어요.”


평소에 부를 일이 없다 보니 아내의 반응이 빨랐습니다. 다가와 나를 쳐다봅니다.


“여기.”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습니다. 화면을 본 아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하구먼.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꺼내 드세요.”


“그게 아니고, 저거.”


“저게 그거고 그게 그거지 뭐.”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보입니다. 나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반쪽을 먹었습니다. 귤을 꺼내 보입니다. 다시 손바닥을 보였습니다.


할머니 냄새가 납니다.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한밤중이면 군밤이 군고구마가 제격입니다. 화롯불에서 군밤이 익어갑니다. 소죽을 끓이는 사랑방 아궁이에서 고구마가 익는 냄새가 폴폴 납니다.


‘고구마와 동치미’


겨울의 점심입니다. 겨울밤 간식입니다. 어릴 때 참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그때의 맛이 입에 붙었을까요. 서울로 이사를 하고 나서입니다. 겨울밤 길에서 군고구마의 수레를 보면 잠시 가던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침은 넘어가면서도 사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는 공짜인데 그 흔한 고구마까지 사 먹어야 하나, 그 흔한 밤까지도……. 종이봉투를 들고 가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군고구마, 군밤을 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홍시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주문할까요.”


고개를 저었습니다.


“고구마.”


“아궁이나 난로에 구워 먹어야 제맛인데.”


“그럼, 연탄난로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시골 학교에서의 일입니다. 방학 때 일직 당번을 서는 날입니다. 학교에는 오로지 나 혼자입니다. 학부모가 어떻게 알았는지 고구마를 한 자루 가지고 왔습니다.


“군고구마를 좋아하신다기에.”


아이들이 하나둘 가져온 고구마를 난롯불에 구워 함께 먹은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오지 않는 너른 운동장은 눈의 세상입니다. 하루 종일 학부모 한 사람의 발자국이 교문에서 교무실 입구까지 무늬를 찍었을 뿐입니다. 그마저도 오후에는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절간이 이보다도 더 조용할 수 없습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보, 군고구마.”


접시에는 납작하게 저며진 고구마가 소복이 쌓였습니다. 동글동글 무늬를 그렸습니다. 군고구마는 군고구마인데 아궁이 태생이 아니라 프라이팬 태생입니다.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동치미 대신 배추김치라도 있어야 하는데.”


“뭐, 시골 사람 아니랄까 봐.”


깊어져 가는 겨울, 오늘 밤은 새로운 별미를 향해 눈길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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