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배움의 길은 20211222
평생학습관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했습니다. 배울 거리라도 있나 했지만 프로그램이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내년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을까. 이곳저곳을 뒤지다 전시회 난을 보니 문해교육에 대한 작품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점심을 먹은 후 집을 나섰습니다. 요즈음은 기온이 낮으니 해가 있을 때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내렸습니다. 걸어가도 되겠지만 발걸음보다 마음이 앞섰습니다. 문해교육 전시회가 처음 열리던 해부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관람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때문인지 관심이 갑니다. 비록 나이가 많은 성인들이지만 특별한 몇몇 작품을 빼고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늦은 나이에 도전한다는 자체에 높은 점수를 줍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그들은 교육의 시기를 놓친 사람들입니다. 생활고나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짐작했습니다. 배움이 적다는 것을 인식하고 늦게나마 학업의 길에 들어서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드디어 작품전시회까지 열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회에 참가한 학생 중에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목표로 배움을 끈을 이어가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작년에 텔레비전을 통해 문해교육의 현장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계속하여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르고 대학의 문턱을 넘어섰습니다. 학력이 최고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학벌이 사람의 외모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검정고시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나도 중고등학교 때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습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이차 시험을 봤습니다. 합격했지만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재수를 택했습니다. 이참의 검정고시에 도전하여 학습 기간을 단축하고 싶었습니다. 열심히 했지만, 마음같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원하는 국립고등학교에 합격했지만 다녀보니 생각과는 달리 적성에 맞지 않습니다. 갈등의 연속입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를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옆 반에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집도 그리 멀지 않고 같은 방향입니다. 그 친구는 검정고시에 합격하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했습니다. 별을 이마에 달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나는 꼭 짚어 어디라고 정한 것은 없지만 친구와 함께하는 길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빨리 지금의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이 학년 초부터 시작한 검정고시 준비는 우리의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친구는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전 과목 합격입니다. 그 길로 그는 자퇴하고 육군사관학교 입학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학교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삼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친구는 별을 달아보지는 못했지만, 원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나는 다음 해에도 도전했지만, 미술과 음악 과목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갈등 속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특수학교였던 만큼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지만, 고민이 계속되었습니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시작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직장도 대학도 포기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느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이미 마음에서 떠난 상태입니다.
다시 도전했습니다. 이 길이 적성에 맞을지 알 수 없지만 일 년의 재정비 끝에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교직의 길을 걸었습니다. 중간에 갈등의 시간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이 세상에 백 퍼센트의 만족이란 없다는 생각입니다.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떤 사람은 배움 자체가 지겹다고 하는데 나는 재미납니다. 가만히 있으면 허전합니다. 뭔가 해봐야 합니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악기를 만지든, 무엇인가 만들든, 아니면 걷기라도 하든, ‘든’ 자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배운다는 자체에는 스트레스가 따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성취감도 있습니다. 익히는 데는 고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이를 참고 넘기면 드디어 희열의 시간이 옵니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기쁨과 함께 자신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쉬운 예를 들면 수영, 자전거, 스케이트가 그렇습니다. 한 번 익히면 끝까지 내 것이 됩니다.
전시회를 거의 둘러보았을 무렵 안내를 하는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르신 문해교육 수강생이세요?”
“아니요.”
내가 작품을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본 때문인지 모릅니다. 전시 공간을 도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지났습니다.
“방명록에 서명을 좀 해주시고, 격려의 짧은 메모도 남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여기 참여하신 여러분은 모두 위대합니다. 목표를 향해 계속 정진하십시오. 좋은 결과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